1939년에 이미 독일의 패배를 결정 지은 어떤 이유-오슬로 리포트

1939년, 11월, 노르웨이 주재 영국대사관 무관이던 헥터 보예스중령은 자기에게 온 우편물을 살펴보던 "어느 익명의 독일 과학자"로부터 온 두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독일이라!... 폴란드침공으로 적국이 된 국가의 과학자가 왜? 헥터중령은 두통의 우편물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살폈다. 한통은 단순히 종이 몇장이 들어간 두께였지만, 다른 한통은 뭔가 묵직한 것이 들어있었다.

폭발물일까? 헥터는 충분히 그럴수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헥터는 그런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고 두통의 우편물을 개봉했다. 그리고 헥터는 그안에서 폭발물보다 더 충격적인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7페이지로 정리된 독일군사과학의 지금까지의 연구결과가 앞으로의 연구예정에 관한 보고서였다. 그리고 묵직했던 물건은 폭탄이 아니라 독일이 개발한 근접신관의 프로토타입이었다!

독일의 JU88양산계획과 영국이 전쟁개시와 함께 제거해야할 주요군사연구시설, 그리고 독일의 신무기들과 그대응책들...
독일의 군사기술비밀들을 사정없이 노출시킨 이 보고서는 한가지 요청을 끝으로 마무리 되있었다.

"당신들이 이 우편물을 받았다면, 11월20일, BBC심야방송에 "헬로, 여기는 영국입니다." 대신 "헬로, 헬로, 여기는 영국입니다."라고 오프닝멘트를 변경해주시길 바랍니다."

헥터는 이것이 앞으로 전쟁의 방향마저 좌우할 물건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 우편물들을 급히 본국의 SIS에게 보냈다. 오슬로 리포트로 명명된 이 우편물을 받아본 SIS의 입장은 이랬다.

"이걸 믿어야 돼?"

그도 그럴것이 우편물에 기록된 정보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SIS는 이게 독일의 떡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우에 따라선 이 우편물은 소각되던지 SIS의 창고 어딘가에 처박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SIS의 이러한 의혹에 반론을 제기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SIS의 군사과학정보분석팀에 있던 젊은 물리학자 레지날드 빅터 존스였다.

<레지날드 빅터 존스 박사, 2차대전때는 파릇 파릇했다는데... 그시절 사진은 아쉽게도 없다.>


"몇몇 오류가 있지만 기록된 정보들이 대부분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특히나 독일의 전자기술과 레이더기술에 관련된 부분은 전문가가 쓴것이 확실해 보인다...이정보는 독일의 떡밥이던가, 아니면 누가 목숨걸고 쓴거다. 난개인적으로 후자로 믿고 싶다."

결국 SIS는 레지날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연합군은 독일의 신무기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고, 독일의 무기개발능력을 저하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리포트의 내용

7장이었던 원본은 전쟁이후 유실된 것을로 알려져있다. 대신 영국의 공립문서보관서에 그 사본이 보관중인데 남아 있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몇가지 내용들은 상당한 오류를 보이는데 이는 작성자가 간접적으로 취득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JU88양산-독일은 현재 한달에 5,000대 꼴로 융커스폭격기를 양산하고 있다.
1940년 3월이 되면 총 25,000대이상의 융커스폭격기를 보유하게 될것이다. 물론 1940년 서부전선개전 당시 25,000대의 융커스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上-독일의 다목적 폭격기 JU88, 下-일본의 모 게임소프트에서 손댄 JU88>


프랑켄-독일의 최초의 항공모함인 프랑켄이 킬 군항에서 건조중이다.
아마 그라프 제펄린의 이름을 잘못알았던 모양이다.

 

무선조종글라이더-루프트바페가 로켓추진식항공기를 무선으로 조종하는것에 대해 연구중이다. 폭격기의 조종사가 카메라영상을 보고 간단한 조작기구를 이용해 목표물까지 이 글라이더를 유도한다. 이 무기에 대한 연구시설은 페네뮌데에 있다.
대충 읽어보면 떠오르겠지만 지중해에서 처음으로 데뷔한 최초의 대함미사일로 불리는 하인켈293 얘기다. 리포트가 제공한 정보대로 RAF는 히드라작전이라는 고도의 낚시를 이용해 페네뮌데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킨뒤 철저히 파괴했다.

<Hs293 1943년 지중해에서 영국군 수송함을 격침하면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조종-위의 시스템을 로켓대신 항공기에 적용한 예인듯?

무선조종포탄-마지노선 공략을 위해 독일육군이 무선조종시스템을 탑재한 구경 800mm의 로켓추진식포탄의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포탄이 너무 빨라 제대로 된 조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했다. 무기개발이 지연된 것이 마지노선 우회의 한 원인일수도?

레츨린-베를린 근교의 뮈리츠호수부근에 자리한 레츨린마을은 루프트바페의 연구시설이 있다.

공습경보체계-독일은 JU88에 레이더를 장착해 공습대비에 운영하려하고 있다. 이러한 레이더는 알루미늄 조각을 공중에 살포함으로서 무력화시킬수 있다.
영국이 윈도우, 미국이 체프라고 부른 그 방식이다.

근접신관-독일은 전자기장을 이용해 목표에 근접하면 터지는 근접신관을 개발했다. 이에 프로토타입도 우편물에 동봉했다.
연합군도 비슷한 걸 개발하고 있었고 이걸로 전쟁중에 독일보다 재미좀 많이 봤다.

이외에도 독일군의 신형어뢰, 폴란드전에서 선보인 독일군의 벙커 공략법등등이 리포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훗날 레지날드는 오슬로 리포트에 관해 이렇게 평했다.

"물론 우리는 오슬로리포트 이상으로 가치있는 정보들도 많이 확보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것들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얻은것인데 반해, 오슬로리포트는 어떠한 희생자도 없이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리포트의 작성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렇다면 오슬로 리포트의 작성자는 누구였을까?

리포트의 작성자는 바로 이사람, 지멘스그룹의 연구진이었던 한스 페르디난트 마이어박사였다. 폴란드전 개전이후인 1939년 10월 30일, 마이어박사는 노르웨이의 오슬로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 호텔에서 면장갑을 낀체 호텔 짐꾼으로부터 빌린 타자기를 이용해 이틀에 걸쳐 7페이지에 달하는 오슬로 리포트를 작성해 노르웨이주재 영국무관 헥터중령에게 보냈던 것이다.

<지멘스 홈피에서 긁어온 마이어박사의 사진>


그는 오슬로 리포트와는 별도로 덴마크의 닐스 호름브라트박사를 통해 자신의 오랜 영국친구인 헨리 콥덴 터너와 연락을 취하려고 시도했다. 닐스박사는 쾌히 이역할을 받아들였지만 1940년 3월, 히틀러가 덴마크마저 침공하면서 이 루트도 사실상 단절되고 만다. 마이어는 독일로 귀국한 뒤, 1943년 간첩혐의로 체포되어-덴마크에서 영국과의 연락망을 만들려한 죄였다.-종전때까지 집단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독일은 끝까지 오슬로 리포트가 있다는것도 몰랐다. 영국도 이걸 누가 작성했는지는 종전이후에도 몰랐다.
작성자인 마이어박사도 굳이 자신이 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1977년에야 처음으로 자기 아내에게 얘기했을 정도니.

오슬로 리포트의 작성자가 밝혀진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1953년 12월 15일, 항해중이던 퀸 메리호에서 마이어의 영국친구 헨리가 레지날드의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저녁식사 도중 전쟁 당시 연합군에게 막대한 공헌을 해준 어느 문건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헨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오슬로!"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어 헨리는 자신의 독일친구 마이어에 관해 얘기했다. 그가 개전초기 오슬로에서 어느 문건을 작성했으며 지멘스에서 일하면서 군사기술정보에 쉽게 접급할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헨리의 얘기를 듣고 레지날드는 연합군을 도운 "익명의 독일 과학자"가 바로 마이어임을 직갑했다.

이어 1955년, 드디어 레지날드와 마이어가 만나게 되었다. 뮌헨에서 열린 레이더기술에 관한 컨퍼런스에 만난 레지날드와 헨리, 마이어는 마이어의 자택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도중 레지날드는 자신이 전쟁 기간동안 SIS에서 일했음을 밝힌 뒤, 마이어에게 물었다.

"당신이 오슬로 리포트를 썻나요?"

마이어는 잠시 머뭇거린뒤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16년만에 배일에 쌓여있던 작성자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두사람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서신을 교환했고, 레지날드는 마이어가 어떻게 서신을 작성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되었다. 레지날드는 2차대전 당시 SIS에서 자신이 근무했던 경험을 책으로 쓰고자 했는데, 오슬로 리포트의 작성자의 신원을 공개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였다.

<레지날드가 쓴 Most secret war, 1978년 초판에선 공개못한 오슬로 리포트작성자의 신원이 1989년 개정판에서는 공개되었다.>

마이어 본인도 공개되길 바라지 않았던 탓에 레지날드는 결국 1978년 책을 출판하면서 리포트의 작성자신분을 숨겨야했다.
1980년 마이어가 사망하자, 레지날드는 1989년 개정판에서 리포트 작성자의 신원을 공개했다.

by Cicero | 2008/07/01 20:10 | side of histor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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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VP at 2008/07/01 21:50
그러게 개발만 됬다 하면 줄줄 새는 독일군의 병기개발정보....우라늄폭탄 프로젝트도 미국 귀에 들어가서 서로 열나게 핵폭탄 만들기 결쟁을 한 걸 보면...
Commented by Cicero at 2008/07/05 13:17
뭐 나치스 잘되는 꼴 보기 싫은 '소수의 정의로운 독일인'들의 역할이 컷던 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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