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방부의 금서 목록, 어떤 국방일보의 추천도서.

옙~. 시간을 (거꾸로)달리는 국방부가 멋지게 한건하셨다.

[당 정치위원회의 성명서] 국방부의 분서갱유...또냐???

[한겨레] 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 국방장관 지시따라 책23권 차단·수거명령








아마 이명박정부수준 맞추느라고 불온서적 정리해서 금서목록을 만드셨는데...이건 참 수준이 개그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가 반자본주의가 아닌 북한찬양 카테고리에 들어갔는지는 의문이지만...

반정부,반미 카테고리에 <나쁜 사마리아인>?
이양반들 책은 제대로 읽어보고 목록 정한건가? 읽어보신분들은 알겠지만 나쁜 사마리아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책이다.-대부분 국가들이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을 자주하며,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으로 이윤을 얻은뒤, 후진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요내용이다..참고로 2007년조선일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던 책이다. 근데 그게 반정부, 반미로 구분되나?  누가 켐브리지대학 경제학교수책이 금서목록에 들어가야하는 이유좀 명쾌하게 설명해주라!
아항~ 한미FTA에 대한 반대가 곧 반미, 반정부라는 얘기 같으신데...






그럼 이책들은?





한미FTA반대의 선봉으로 뛰는 우리 이해영교수님이 저자거나 공동저작인 책들이다. 솔직히 한미FTA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란면에서보면 더하면 더했지 덜한책들이 아닌데 용케 금서목록을 피해갔다. 일관성이 없는건지 아니면 알바들 끌어다 쓴건지...



말이 나와서 하는거지만 군의 검열체계라는거, 시대를 역행하는건 둘째치고 기준도 엉망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필자는 군시절 부대에서 도서관 관리병으로 일했었다. 당시 교보문고와 문광부에서 기증한 책들중에는 이런것들이 있었다.
말그대로 북한 현대사. 북한에 대한거면 뭐든지 알레르기 일으키는 국방부가 용케도 받았다.
제목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한국인 탈레반'. 파키스탄주재무관이던 예비역장교분이 자신의 아프가니스탄방문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탈레반 입장에서 미국 조낸 까는 내용이 있다.
 노동자들의 잡지, 노동자의 힘을 출판하는 잡지 메이데이에서 출판한 책.이 이상 코멘트가 필요한가?

이외에도 몇권 더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넘어가도록하자.
뭐 이걸보면 이런 말도 나올수 있을꺼다. '고작 단위부대차원이니 그럴수도 있는거 아냐?'라고 말이다.
그래? 그럼 이쪽을 보시길.

국방일보의 '어떤' 추천도서리뷰다.

http://kookbang.dema.mil.kr/kdd/HearTypeView.jsp?writeDate=20070126&writeDateChk=20070126&menuCd=3004&menuSeq=9&kindSeq=3&menuCnt=30914

기사보기귀찮으신분은 이쪽 책표지를 봐주시길.

제목과 표지부터 노골적으로 석유를 위한 전쟁(이라크전쟁)을 비난하고 있는 책. '석유, 욕망의 샘'이다. 이라크해방을 위해 미국과 함께 이라크에 파병한 국가의 국방부 공식신문에 이런 책이 추천도서로 올랐던 것이다.




이쯤 보면 이인간들...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다. 그냥되는데로 아무거나 잡아서 금서목록 만드는거다.대체 이들의 정체는 뭐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국방부금서목록에 올릴만한 책을 한권 추천해 드려야겠다.
Z.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 미국이 유라시아를 하나의 체스판으로 보고 타국들을 어떻게 체스말처럼 움직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해야하는지를 제시한 책이다.
읽고나면 미국이 벌이고 있는 거대한 체스게임의 일개말로 전락한 느낌이 들어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미국이 혐오스러워진다.-아 물론 개인적인 경험상. 이만큼 위험한 반미서적이 있나? 국방부는 금서목록에 '필히'추가해 주길. 대한민국장병들이 미국의 일개 장기말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안되잖아?

by Cicero | 2008/07/31 15:23 | 정치 | 트랙백 | 덧글(4)

중국의 이탈리아군


BGM은 이탈리아어버전의 판저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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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엽부터 20세기 초, 이미 막장으로 치달은지 오래인 중국의 마지막왕조인 청조가 임종전의 가뿐숨을 몰아쉬던 때의 일이다. 당시 중국은 반식민지화된 상태였고 핵심적인 이권들은 모두 서양열강들에게 빼앗기고, 열강들의 지원을 입은 기독교선교가 조차지를 중심으로 보수적인 중국인들의 반감을 사며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반감은 둑일의 조차지인 산둥반도에서 눈에 띌정도로 심했는데, 이곳의 교회는 독일의 지원으로 하나의 권력기관화되어버렸다.

"산둥에서 문제가 생기면 관청보단 교회에 가서 얘기하라."

결국 이런 상황으로 인해 이지역의 반기독교감정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이지역에서 최초의 의화단봉기가 일어나게되고 봉기는 곧 북경등, 중국의 주요도시로까지 번져나간다. 봉기의 세력과 영향력은 점점 증대되어가는것을 본, 서태후를 비롯한 청조의 지도부는 의화단을 후원할것을 명하지만, 열강의 힘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결정이었다.

서구의 제국주의국가들은 의화단봉기의 진압을 위해 독일을 중심으로 연합군을 편성해 원정에 나섰다. 잘무장되고 훈련된 열강의 군대앞에 의화단은 허무하게 무너질수밖에 없었다. 청조도 뭔가 잘못되간다는 걸 알고, 도리여 희화단진압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의화단은 무너졌고, 청조는 또다시 열강에게 '배상'해야했다.

열강은 9억8천만냥이라는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수많은 조차지를 얻어냈다. 불과 몇명의 공사관원과 사업자들을 지키기위해 2만명의 병력을 파견했던 이탈리아도 텐진과 상하이, 베이징에 조차지로 얻었는데, 이곳들이 이탈리아의 최초이자 유일한 아시아식민지였다.
<텐진의 이탈리아군과 외교관들>

이탈리아의 유일한 아시아식민지라고는 하지만 이탈리아는 적어도 1차세계대전때까지는 이 식민지를 지키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것 같진 않다. 1915년 당시 이곳을 방어하는 병력은 200명의 베르사리엘리와 50명의 중국인병력, 그리고 좀 특이한 경력의 1개대대(이탈리아와 오-헝제국전선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러시아에게 구출되서 이곳까지 이송된 이탈리아군 병사들)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뭐 만명 안팍의 현지주민과 300명의 이탈리아인만이 거주하는곳에 많은 병력도 필요없는데다가 적국이라고는 산둥반도의 독일군뿐이고 러시아, 일본등 아군은 널렸으니 충분히 이해가 될만도 하다.
<텐진의 중국현지 징집병.>
그런데 이게 무대리가 집권하면서 상황이 좀 바뀌기 시작했다. 무대리는 이 아시아 유일의 이탈리아식민지에 병력을 증파하기로 결정했고 1925년 3월, 정예부대로 손 꼽히는 산 마르코연대에서 차출된 300명의 병력으로 Battaglione Italiano in Cina가 구성, 중국으로 파견된다. 이 대대는  산 마르코, 리비아, 산 조르지오라는 이름이 붙은 3개중대로-모두 전공을 세운 군함의 이름에서 유례했다고 한다.- 구성되었으며, 이들이 배치된 기지는 에르마노 칼롯토라고 명명되었는데, 의화단봉기에서 사망한 이탈리아군 장교의 이름을 쓴것이었다.


무대리가 상당히 신경써서 엘리트부대를 배치한건 좋았지만... 결정적 문제는 이들이 할일이없었다는거였다.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 사이가 긴장선을 탄것도 아니고-손문이 이미 신해혁명때부터 열강 이권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표명한데다, 1930년대 중국정부는 두명의 이탈리아인, 지벨로 소코와 에바리스토 카레티를 각각 철도부와 체신부의 감독관에 임명했다.뭐 , 분명 이시가 군벌들의 권력다툼과 북벌전쟁으로 인한 혼란기이긴 했고 1927년에는 국민당정부의 북벌로 고무된 민중들이 영국의 조차지 두곳을 습격해 점거한적도 있지만 국민당정부가 알아서 돌려준데다 대부분의 조차지는 중국의 혼란과는 별도로 평온했다.- 마적떼가 미쳤다고 조차지습격할것도 아니고...



결국 이들은 1930년대전반기까지 한거라곤 1928년4월 18일,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방문때 사열식을 한것과 치안업무빼곤 없었다. 이러한 평온함속에 이탈리아의 조계지는 꾸준히 성장했다. 1930년 무대리는 이 알짜배기땅에 자기 사위인 갈레아초 치아노를 베이징주재 공사 겸 상하이 조차지의 전권대사로 임명시켰다. 훗날 삼국동맹등 추축국들의 동명결성에 크게 이바지하게되는 그는 이곳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살려 무솔리니와 장개석, 두 파시스트정권의 동맹을 돈독히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군부를 비롯한 국민당지도층에-장개석을 포함해서- 이탈리아 파시스트정권에 우호적인 세력들을 심는데 성공했다. 치아노는 1932년 묵덴(혹은 센양이나 봉천으로 불리는)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충돌에서도 중개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장개석의 신뢰를 받았다.
<上-무솔리니의 사위, 갈레아조 치아노, 下-중국에 있던 시절의 갈레아조 치아노>

1930년대 중반에는 양국간의 우호는 절정에 달했고 무솔리니는 Sm-79 프로토타입 6기와 그에 딸린 조종사, 기술지원팀, 교관을 장개석에서 우호의 선물로 보냈다.-재밌는건 비슷한 시기 히틀러 역시 자국군에도 배치안된 M35헬멧 30만개를 중국에 판매했다는건데, 유럽의 파시스트정권들이 중국에게 꽤 많은 호감을 가진 반증이라고도 볼수있겟다. 이탈리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군기의 라이센스 생산 설비까지 제공해주려 했지만, 이것까지는 역시 힘들었다. 대신 중국은 이탈리아로부터  Cr32, Ca101,Ca110, Ca133등 다양한 이탈리아 공군기를 추가로 구매했다.



<맨위부터 sm79, Cr32, Ca101, Ca110, ca133. 중국군은 이외에도 독일로부터 He111을, 미국으로부터는 B10을 수입했고 1939년 이후에는 소련제까지 들여놨다.이로인한 혼란도 적진 않았을꺼다.>

중국과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장개석 이두 파시스트간의 굳건한 동맹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았지만 1930년대중반을 지나면서 돌이킬수없게되버렸다. 1937년 9월 6일, 이탈리아는 독일, 일본과 함께 반공협정에 조인한것이다. 양국간의 관계는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반공협정이 체결되기전인 1937년 6월 13일, 이미 일본의 공격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해 있는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교전국과의 동맹, 중국에게 이것은 이탈리아의 배신이었고 이로서 이탈리아조차지들의 고립되었다. 상황의 급박함에 위기감을 느낀 조차지의 군 책임자이자 조차지의 파시스트당 대표인 카를로 푸마갈리는 병력들을 배치하고 본국에 추가병력과 군함증원을 부탁하는 한편 바시갈루피 함장의 포함 레판토와  Battaglione Italiano in Cina를 규합해 급히 조차지 방어병력을 편성했다.
<텐진의 건보트, 레판토>

이탈리아군사령부도 반공협정의 여파와 중일전쟁의 심화로 조차지가 위험해질것이라는것은 충분히 예상했었고 수백명의 증원병력과 함께 경순양함 레이몬도 몬테쿠콜리를 파견했다. 레이몬도 몬테쿠콜리는 9월 15일, 일본이 상하이에 폭격을 퍼붓기 시작한 그날이었다.중일전쟁의 전황은 날이 갈수록 격심해졌다. 이탈리아군은 텐진과 상하이의 자국민들을 보호하기위해 760여명의 병력인 Granatieri di Sardegna대대를 에디오피아의 마사우아에서 텐진으로 파견했다. 이제 총 1,200명의 이탈리아육해군 병력들이 텐진과 상하이에 주둔하게 되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조차지의 거주민들 수보다 파견된 병력의 수가 훨씬 웃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텐진에 거주하던 이탈리아인이 500~600명, 상하이에 거주하는 인원은 42명이었다.  이점은 조차지에 병력을 파견했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시기 영국과 미국도 조차지에 있는 자국민들을 보호하기위해 각각 2,500명과 1,400명의 벙력을 상하이에 파견했는데 상하이에 거주하는 영국인은 924명, 미국인은 308명이었다. -덤으로 199명의 자국민이 살고 있는 독일과 182명이 살고 있던 소련의 파견기록은 안보인다.

<레이몬도 몬테쿠콜리, 17세기 동명의 이탈리아 군인에서 함명을 따왔다.>

서구 열강들이 상하이등, 조차지에 병력을 증파하는것과는 별도로 일본의 상하이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그리고 급기야 9월 27일과 10월 24일, 일본군의 폭격기가  이탈리아군 경순양함 레이몬도 몬테쿠콜리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비록 파편에 의한것으로 의도적인게 아니었던 사건이지만 1명이 죽고 여러명이 부상당한 사건이었던 만큼 도쿄와 로마간에 외교라인은 긴장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일본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한편, 12월 23일 손상된 레이몬도 몬테쿠롤리를 자매함 바르톨로메오 코레오니로 대체한다. 독-이-일 동맹이 결성된지 1년도 되지않은 시점에서 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레인몬도 몬테쿠콜리의 자매함,  바르톨로메오 코레오니>

중국으로선 상당히 반가운 상황이었지만... 이게 이탈리아와 일본의 돌이킬수없는 대립으로까지 빠자진 못했다. 양국간의 암묵적 거래가 있었는지, 혹은 독일이 중재에 나서줬는지, 이 대립은 이탈리아가 양보하는 형태로 마무리지어졌다. 1939년 9월 5일, 바르토레오메 코레오니가 철수했고 이어 나머지 이탈리아군도 카롯토기지의 병력과 포함 레판토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다. 1937년 이전의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이 다시 돌아오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40년 6월 10일 이탈리아가 본격적으로 2차대전에 참전하자, 이탈리아해군 사령부는 다시 에디오피아의 마사우아에 있는 부대들을 텐진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는 텐진이 보호였는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영국군이 이탈리아령 소말리아를 점령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1941년 2월 에디오피아의 마사우아기지가 함락되긴 두달전, 이탈리아군은 식민선 에르트리아와 무장 수송선 램브1,2에 병력을 담아 텐진을 향해 출발-사실상 도주-했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상하이, 텐진 혹은 고베. 추축국이 통제하고 있는 항구에 어떻게든 도착하라!" 였다. 에르트리아와 램브2는 운좋게도 목적지에 도착할수있었지만, 램브1은 별로 운이 좋지 못했다. 그들은 몰디브 근해에서 순찰중인 뉴질랜드 해군의 경순양함 리앤더를 만나 침몰하고 말았다.

1941년 3월부터 1943년 9월까지, 이탈리아는 텐진과 상하이,베이징, 그리고 홍커우에서 조차권을 유지할수있었다. 이곳들이 일본군의 점령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 식충같은 데다가 -현지 지휘관의 표현대로- 영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불러올수있는 유럽인들을 쫒아내고 싶었지만 도쿄는 굳이 로마와의 또 한번의 마찰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기에 참아야만했다. 이탈리아인들도 얹혀 사는 입장인 만큼 조용히 살았다. 이탈리아인 조차지의 평온은 얼마동안은 계속되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습격 이전까지 말이다.

진주만 습격이후, 일본이 본격적으로 연합국들과의 전쟁에 나서게되자 수많은 이탈리아의 잠수함들이 일본을 위한 전쟁물자를 실고 상하이와 텐진, 고베로 향했다. 텐진의 이탈리아군들도 몇달만의 휴식을 깨고 다시 전선으로 나섰다.-그래봤자 보급이 주업무지만. 식민선 에르트리아는 이들 잠수함들의 중간보급의 역할을 수행했다. 비록 영국해군이 이탈리아해군의 주요항구로 쓰이던 보르도항을 철저히 봉쇄한 탓에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잠수함들은 꾸준히 일본에 전쟁물자를 조달했고, 고무와 퀴닌, 주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1943년 9월, 텐진의 이탈리아군은 가혹한 운명에 부딧치고 만다.
1943년 9월 8일 새벽 2시, 싱가폴-사방루트 사이에서 잠수함 카펠리니에 보급물자를 전달하던 식민선 에리트레아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이탈리아의 항복소식을 듣게 된다. 에리트레아의 함장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어제까지 최후방이었던 이 지역이 이젠 적진 한가운데가 되버린것이었다. 에리트레아와 카펠리니는 즉시 항로를 변경해 수마트라를 지나쳐 전속력으로 실론섬을 향해 도망쳤다.
<이탈리아군 식민선 에리트레아.>

다른 이탈리아함선들도 이 갑작스러운 뉴스에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모두들 제각각이었다. 고베에서 수리중인 보조순양함 칼리테아2(수송선 램브2를 순양함으로 개수한 것이다.)와 상하이에 주둔중이던 증기선 콘트 베르데와 건보트 카롯토와 레판토는 일본군에게 항복하느니 자침을 택했다.
<개수전의 수송선 램브2>
<건보트 카롯토>
보르도를 출발해 텐진으로 향하던 잠수함 카그니는 인도양을 지나던 도중 항복소식을 접했고 그대로 남아프리카의 더반으로 가서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싱가폴에서 화물을 적재중이던 잠수함 줄리아니와 톨레리, 사방에 정박중이던 카펠리니는 계속 일본군과 함께 연합군에 대항해 싸우기로 결심했지만, 일본군은 이들의 투항을 받아들이는척하면서 포로수용소에 가두었다.

이런 일본군의 배신행각도 있긴했지만 적지 않은 수의 이탈리아해군은 그대로 필리핀 패낭의 독일군유보트사령부의 지휘하에서 전쟁을 지속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 이후에는 또다시 20여명의 수병이 일본해군과 합류해 전쟁을 지속했다. 잠수함 톨레리는 일본항복이후인 1945년 8월 30일, 미군의 B-25를 대공기관포로 격추시켜 추축국의 마지막 '승리'를 장식했다.연합군을 상대로 태평양에서 최후순간의 승리를 쟁취한건 이탈리아 잠수함이었던것이다.-태평양전선뿐만 아니라 2차대전 통틀어서 마지막 성과가 아니었을까?

이탈리아의 항복은 육군에게도 비껴갈수없는 상황이었다. 일본군병력 1000여명이 15대의 경전차와 몇문의 화포지원을 받으며 이탈리아군이 점거하고 있는 베이징의 라디오방송국을 포위, 공격해 들어왔다. 해군 중령 발다살레 휘하의 이탈리아군 100명은 일본군의 공격을 하루이상 버티다가 모둔 설비와 기밀문서를 파괴한뒤 9월 10일 오전 9시에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교전후 29명의 장교와 병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원이 계속 추축국의 일원으로 싸우길 원했지만 일본은 이들을 모두 조선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보냈다.
<1939년, 텐진의 이탈리아군>

텐진의 이탈리아군도 타나카중령이 지휘하는 일본 육군 6,000여명의 병력과 10여대의 경장갑차량에게 포위되었다. 이탈리아에선 나름 정예로 통했던 산 마르코연대출신의 병사들이 중심이된 600명의 병력들과 텐진주재 이탈리아영사 스테파넬리는 일본이 난징과 기타 중국의 도시에서 무슨짓을 했는지 아주 잘알고 있었고, 텐진이 함락될시 똑같은 참극이 벌어질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군은 1주분 이상의 식량과 탄약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로 어떻게든 버텨보면서 주변 연합군의 도움을 기대볼생각이었다.
-혹은 텐진의 중립화라던가.

타나카중령은 이탈리아군이 잘 훈련되고 무장되어있으며 쉽게 항복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는 두정의 건보트를 강을 따라 텐진 인근으로 접근시켰고, 베이징의 공항에 폭격을 요청했다. 타나카의 포병들이 텐진을 향해 위협 사격을 가한지 얼마안되어 전차와 야포를 갖춘 1개사단급의 일본군이 텐진으로 접근중이라는 소식이 이탈리아군에게도 들려왔다.
이 압도적인 화력의 일본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는 이탈리아군 지휘관 카를로 델 아쿠아의 항전 의지를 제고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에게 항복했다.


<이탈리아중국주둔군의 모체가된 산 마르코연대의 병사와 부대기
산 마르코 연대는 1차대전 당시에는 베니스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2차대전 당시에는 최초로 베니스를 해방시킨 연합군부대로 이탈리아군에서는 꽤 엘리트로 통한다>

일본군의 포로가된 텐진주둔군은 전체 600명중에서 170명만이 추축국가담을 선택했고, 나머지 병력들은 종전때까지 조선과 일본의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일본에 대한 협조 불응으로 포로가 되었던 이탈리아군들은 연합군이 차례 차례, 포로수용소를 점령함에 따라 해방되었다.
1946년 3월, 파시트와 반 파시스트 모두를 포함한 마지막 이탈리아군을 미 해군 함선이 나폴리로 수송함으로서, 극동지역에서 이탈리아군은 근 반세기만에 자취를 감췄다.

by Cicero | 2008/07/30 21:21 | side of history | 트랙백 | 덧글(3)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우리 옆집에 나치가 산다?

홀로사는 노인과 그와 친분을 쌓는 소년.
둘은 오랜시간을 함께하고 노인은 자신과 함께 보낸 시간때문에 성적이 떨어진 소년을 위해
소년의 조부연기까지하며 그를 돕는다.
플롯만 보면 영화전면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노인과 소년이 마주보며 웃는 
이런 영화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영화의 포스터는 이쪽이다.

 어떤가? 음험한 스릴러의 기운이 감돌지 않는가?
그도 그럴것이 이 영화는 스릴러의 거장,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스토리상 노인과 소년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건 '협박'이니까

이쯤에서 잠깐 스토리를 볼까?
"주인공인 토드 돈슨은 학교에서 배운 홀로코스트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많은 자료들을 찾아 다닌다.
그러던 중 토드는 이웃에 사는 노인 아서 덴커가 유대인학살로 수배중인 전범 쿠르트 두센더라는것을 알게되고, 토드는 그를 협박해 더많은 홀로코스트의 진상을 알고자 한다.
이렇게 나이먹을 만치 먹은 사람 잡아다가 밀덕 코스프레까지시키고, 욕질까지 해댄다.
그러나 토드는 아서의 얘기를 들을수록 환각과 악몽, 성격파탄에 급기야 발기부전(...)에 성적하락으로까지 이어지고, 쿠르트 역시 서서히 자신이 잊고 지내던 친위대시절에 대해 눈떠가기 시작한다.


급기야 토드는 성작하락으로 부모님모셔오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고성적하락의 원인이 밝혀지는것을 막기위해 아서는 토드의 조부인것처럼 연기해 위기를 넘기고 그동안 토드와 자신사이에 일을 기록한 일지를 빌미로 이제까지의 관계청산을 요구하는데..."

둘의 관계는 협박으로 탄생했고 협박으로 유지되다가 협박으로 종결된다.
그리고 그 협박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로 이어진다. 토드는 초반에 쿠르트의 비밀로 협박을 가하고 그를 지배한다. 
그러나 점차 협박의 결과는 도리어 토드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고 급기야 두사람의 지배관계까지 뒤엎는다.

결국 협박으로 만들어진 두사람의 관계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의 관계에서 발전하지 못한다.
뭐 영화도중 쿠르트가 토드네 집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장면이라든가, 토드가 다시 상위권 성적을 회복하자 쿠르트가 기뻐하며 요리하는 장면, 그리고 병원에서 쿠르트와 토드의 마지막 대면장면등을 보면 영화가 드라마와 스릴러의 경계를 오가며 살짝 드라마가 될것처럼도 굴지만... 글쎄? 결국 스릴러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것때문인지 몰라도 뇌입원 영화정보에 드라마, 스릴러로 공동표시해놨다.

뭐 특별히 남는건 없지만 노인과 소년의 협박에 기반한 권력관계의 밀고 댕기기.
그리고 이안 멕켈렌이 잊었던 친위대시절의 광기를 찾아가는 모습이 꽤 볼만한 영화.
-근데 이안 멕켈렌, 메그니토는 언제 개봉할 생각이야?

그런데 이영화대로 만약에 이웃집 노인이 알고보니 수배중인 전범이라면 당신은 뭘 할것인가?

뭐 영화처럼, 협박해본다도 가능하겠지만.... 난 그냥 신고할련다.

by Cicero | 2008/07/24 21:52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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