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하나씩 따져보자. ㄴㄴ홀로코스트수정론비판

1. 아우슈비츠에서는 대량 학살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물들이 있었다. 회스의 회고록과 다른 나치의 기록들에 따르면 나치는 초기에 수용소막사 인근의 벽돌집을 개조해 만든 가스실인  각각 800명과 1100명이 학살되는 벙커1과 벙커2를 두었다. 


현재 남아있는 벙커2의 잔해. 패전이 임박한 때에 나치에 의해 파괴되었다.

나치의 초창기 학살은 이런 간이개조식 건물에서 출발했지만, 곧 회스는 간이건물의 한계에 부딧치게 되었다. 일반 가옥을 개조한 간이가스실은 가스의 완전한 밀폐가 되지 않았고, 지상건물이었기 때문에가스로 죽는 유태인들의 비명이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게다가 죽은 시체를 치우는 것도 문제였다. 나치는 초창기에 유태인들의 시체를 땅에 묻었지만 충분히 깊게 묻지 않아 시체 썩은내가 진동했고, 결국 다시 땅에서 파내 태웠다.
 
따라서 나치는 학살과 시체의 처리를 동시에 진행할수 있는 설비에 공을 들였고, 그결과 나치는 학살을 소각로와 가스실이 결합된 건물 5동을 건설했다. 회스를 비롯한 나치당국자들과 존더코만도들의 회고에 따르면 각각의 건물들은 최소 800에서 최대 1400명의 인명을 죽이고 소각처리할수 있었다. 다섯건물 모두 합친다면 4756멸 가량이었다.

제3번, 4번 소각동의 전쟁당시 사진. 45년 패전이 임박하자 나치에 의해 파괴되었다.

 나치의 학살이 노동력 상실자에 머물렀을거라고? 앞서도 말했지만 1942년 반제회의에서 하이드리히는 노동가능 유태인들을 불임시술시키자는 제안에 대해, 노동가능인구는 어느 정도 남겨두겠지만 죽음이야말로 최선의 불임대책이라고 일축했던 사실이나, 힘러가 모든 유태인의 직접적이고 즉시적인, 그리고 무차별적인 근절없이는 유태인 문제해결은 없다고 발언했던 것은 적어도 나치수뇌부에게 있어서 유태인의 절멸은 현실적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2. 이게 안나올리가 없지. 홀로코스트 부정수정론자들이 좋아하는 단골 소재는 역시 1938년 15,319,359명이었던 세계 유대인 인구가 1948년에는 15,713,638으로 늘어났다는 세계연감(World Almanac)의 통계이다. 그들은 이 수치를 바탕으로 홀로코스트는 과장되었거나 더 나아가서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 통계가 맞을때, 얘기다. 세계연감측이 스스로 밝히기도 했지만 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그렇지않고서는 케네스 멕베이가 지적했던것처럼 1939년에는 유태인 인구가 갑자기 16,643,120명으로 130만 가량 늘어나는 일이 있을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들은 다른 통계들과 교차검증해볼 생각을 안하다. 전쟁후 영-미조사이원회는 974만명의 유럽 유태인 가운데 남아있는 수는 364만명이라고 결론 내렸고, 미국 유대인 위원회도 유사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3. 허수아비 치기부터 작작해라. 난 아우슈비츠에서만 400만이 죽었다고 얘기한 적 없다. 내가 인용한 아이히만의 발언도 모든 절멸수용소에서 400만이 죽었다는 것이지 , 아우슈비츠에서 400만이 죽었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최근 몇주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 논쟁에서-이걸 논쟁으로 부를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도대체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아우슈비츠에서 400만이 죽었다고 언급했는지 제시해보라.

아우슈비츠는 전체 학살을 구성하는 한 부분에 불과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나치는 아우슈비츠 이외에도 60여개 가까운 수용소를 독일 및 점령지에 두었고, 그 가운데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벨제크등 9곳을 절멸 수용소로 운영했다. 2000년에 공개된 나치스의 기록인 회플레 전문에서는 1942년 한해동안에만 트레블링카로 71만명이 이송되어갔다고 기록된다. 바로 그다음해인 1943년 트레블링카수용소는 존더코만도들의 탈주 시도를 겪고 난뒤 폐쇄되었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이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만 70만명 이상이 죽었다고 추정할수 있다.

4. 연구소가 한게 아니라 한 개인이 한 짓이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1985년, 미국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프레드 로히터는 폴란드에서 불법적으로 아우슈비츠 건물의 잔해를 채취해갔다. 로히터는 그가운데 가스실과 소독실의 벽돌에서 발견한 시안화칼륨 잔류물을 비교해 보고는, 소독실 잔해의 시안화칼륨 잔류농도가 가스실 잔해의 농도보다 높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은 사실은 소독실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자들이 반박한바에 따르면, 이를 죽이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많은 치클론이 투입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를 죽이기 위해서는 시안화칼륨이 16,000ppm 농도로 20시간동안 살포해야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300ppm의 농도로 불과 수분이면 충분했다. 회스는 담배 한대 다 태울때 쯤이면 가스실에서 비명소리가 끊켰다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기록했다.

덧글

  • 까마귀옹 2017/06/09 16:35 # 답글

    전에 살짝 짚어보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저런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유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반적인 음모론 추종 이론 외에 말입니다.
  • rumic71 2017/06/09 20:50 #

    오찌아이와 우노 때문이죠,뭐.
  • Cicero 2017/06/12 11:25 #

    사실 한국이 비서구권국가이고 유태인을 직접 만날일이 적다는것도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 토나이투 2017/06/09 17:02 # 답글

    '개스실에 대해 증언한 유태인도 많지만 부정한 유태인도 많았다'

    = 증언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개스실에서 다 죽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부정했다는데 증거부터 봅시다 증거요
  • Cicero 2017/06/12 11:25 #

    증거라도 나오면 그거 반박이나 해줄텐데, 인용하는 주장들 조차도 실제 부정론자들이 말한것과 다른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 긁적 2017/06/09 20:21 # 답글

    아니 걍 두세요 (.....) 쟤 사람 못 만들 것 같아요 (.....)
  • Cicero 2017/06/12 11:25 #

    ㅇㅇ 그런거 같에요
  • 전위대 2017/06/09 23:05 # 답글

    저놈에겐 가스실이 해답.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6/10 01:11 # 답글

    쟤는 헬륨가스와 해피가스를 섞은 환각가스를 먹었나... 죄송합니다. 자꾸 부정을 해대니까 순간 흥분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말한것 뿐인데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강제로 주입시킬려는걸 못참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대로 혼내주는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 놈은 자신이 주장한 사실 그대로를 보여줄수 있나요? 이제는 저 놈의 머리에 담긴 가스를 뱉어내게 해야죠.
  • Cicero 2017/06/12 11:27 #

    그냥 근거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놈인거 같습니다. 아무리 반대되는 증거가 많아도 말이죠
  • 아빠늑대 2017/06/10 12:01 # 답글

    답이 없는 부류군요.
  • Cicero 2017/06/12 11:26 #

    심지어 퇴보했다는 거죠
  • 역성혁명 2017/06/11 21:10 # 답글

    나는 인심이 좋아서 너에게 지는 척 하는 것이다. 도 아니고 참... 결국에는 자기최면이네요.
  • Cicero 2017/06/12 11:26 #

    참 머릿속을 편하게 하고 산다 싶죠
  • 자뻑눈 2017/06/14 03:23 # 삭제 답글

    홀로코스트 광신자들은 전후 한동안 다하우 부켄벨트등 독일 땅의 수용소에서도 개스실과 공장도축이 있었다고 열을 냈으나 그도 바뀌어 이젠 독일내 수용소들에서 개스실은 없었다는 것이 정론이 되었다. 그런 수용소에서도 여김없이 지클론이라는 살충제는 발견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클론은 수용소에서 티푸스와 같은 전염병을 옮기는 이를 구제하기 위한 살충제였다. 아이비 파버라는 회사도 처음부터 지클론을 독개스로 제조한 것이 아니라 살충제로 제조했었고 살충제로 사용했었다.

    부모 죽인 원수보다 더 증오스런 유태인들을 모국인 독일땅에 존재한 다하우 부켄벨트 같은 수용소에서도 개스 학살로 공장도축 하지않았는데 저멀리 군수공장 지대인 아우슈비츠같은 강제노동 수용소에선 알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개스실을 짓고 과학적으로 산술적으로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대량의 인명을 살충제를(?) 사용해 공장식도축을 전개했다? 그나마 사진한장 설계도 한장 일관성 있는 건축 방식도 보이지 않는 개스실이란 곳에서 살충제로 쓰려고 제조한 화학물질로 수백만을 도축했다? 이게 앞뒤가 맞는가?

    나찌는 수만톤분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엔 사린 (자할린) 개스도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간이 제조한 독개스중 인명 살상율 2위에 해당한다. 과거 이라크의 크루드족 학살도 이로 인한 것이며 인류의 화학전 학살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독개스다. 나찌는 전투에 이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당연히 연합군이 보유한 생화학무기의 보복을 두려워해서 였다. 그렇담 살충제가 아닌 창고에 쌓아놓은 수백만을 확실히 살상하고도 남을 이런 생화학 무기를 사용해야지 이걸 쌓아놓고도 살충제를 사용했겠는가 말이다. 이런 생화학 무기는 병기에 대한 생체실험에도 딱인데 말이다.

    인류 역사상 지클론이라는 살충제를 사용해 개스 학살을 시도한 집단이나 국가가 나찌 말고 그 후에 또 있었는가? 케케로 니가 말한데로 살상력이(?) 강했다면 그 후에 인류 학살사에서 지클론은 계속해서 살상 무기로 등장 했어야했다.
  • 자뻑눈 2017/06/14 06:03 # 삭제 답글

    케케로 너 자꾸 병신 흉내 내지 말구................저런 사진인지 그림인지 어디인지도 모를 출처불명의 저 건물이 어떻게 하루 4500명 1년 365일을 개스로 죽이고 소각할 수 있는 증거가 되는지 좀 자세히 알려다오.

    그리고 살충제인 지클론이 어떻게 대량의 사람을 죽였는지 해부학적 근거로 그것이 독개스라고 설명을 좀 해다오.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게.
    분명 면밀하고 계획적인 대량학살이라면 실험도 해봤으며 해부학적 견해가 있을것 아니냐? 그보다 훨씬 더 살상력이 강한 생화학 무기가 개발되어 있는 상태에서 왜 살충제 지클론이 선택 되었는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병리학적 견해를 담은 문서를 가져와서 설명해 다오. ~~그랬을 것이다가 아니라 말이다.

    예로 사린 개스같은 독개스는 인명이 어찌 살상당하는지 왜 죽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부학적 병리학적 설명이 있다. 치클론으로 수백도 아니고 수백만을 살상했다면 그런 조사가 선행 되었을 것이고 그걸 인멸했다고 하더라도 그 후에라도 여러차려 해부학적 견해가 리포트나 보고서 형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죽은 시체사진이나 필름등은 당근 포함해서 말이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홀로코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731 부대의 소규모 생체 실험에서도 전말 다 태우고 삭제한 기록속에서도 당연히 그런 보고서는 남겨졌었다. 사진뿐 아니라 기록필림도 찾아내었다. 니 말로 60개가 넘는 멸절 수용소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독개스로 사람을 수천명씩 죽였다는데....이런게 없다? 나찌가 무슨 마술사냐 요술사냐? 그게 가능하냐?

    나찌는 자신들의 유태인 학살, 빨치산 교수형 사진등을 남겼다. 리가강 부근에서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말이다. 주로 일반 병사들이 개인적으로 휴대한 사진기로 찍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개인 사진기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병사들이 포로가 되거나 전사했을때 그들 품에서 나온 사진들이 우리가 쉽게 보는 유태인을 포함한 동부전선 주민들의 학살 사진이다. 그런 사진들은 자주 발견되는데...그것들은 움직일 수 없는 학살의 증거가 되었다. 유독 개스실 사진이나 개스로 처형된 사람들의 사진은 없다? 왜? 특급 비밀 시스템이라 못찍게 해서? 사진도 못 찍을 특급비밀 수용소를 공장지대에 짓는 또라이들도 있나?

    그럼 연합군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정찰한 정찰기에서 찍은 아우슈비츠 사진에도 쌓아둔 시체의 모습이나 거대한 소각연기 석타더미 즈루 서서 개스실로 실려가는 인민들의 사진은 없다...그저 공장지대에서 피어나는 연기나 노동하는 인간들 모습밖엔,,,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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