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회의의 의의? ㄴㄴ홀로코스트수정론비판



반제회의의 참가자들



당연히 반제회의는 독가스 학살을 결정한 회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결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뻑하는 눈의 여왕이 언급한데로 반제회의는 학살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이송 및 격리를 위한 회의였지만, 그것이 학살을 위한 이송과 격리라는 사실은 또다시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나치는 집권한 이후, 유대인 없는 독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전쟁 이전에 이것은 국외추방이라는 형태로 추진되었지만, 전쟁이 벌어지고 독일이 그 유대인들이 추방되었던 유럽국가들을 점령하게 됨에 따라 도리어 다시 유대인들을 독일안으로 들이는 결과가 되었다. 나치는 이것을 다시 소련을 패배시키고 유대인들을 동유럽으로 이주시켜 노예노동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1941년 소련을 단기간에 패배시키는데 실패하자, 언젠가 점령한 땅위에 유대인을 보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의 참전으로 중립국으로의 유대인 추방이라는 선택지 역시 포기되자, 즉각적인 유대인문제 해결책으로서 유대인의 절멸을 결정했다. 반제회의는 그런 맥락속에서 열린 회의였다.

1942년 1월 20일에 열린 이 회의에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각부서의 대표들에게 친위대가 트레블링카, 벨젝, 소비버등의 폴란드지역에서 절멸수용소가 건설중이며 아우슈비츠는 절멸 및 노예노동 복합수용소로 개조 중임을 알렸다. 학살은 이미 결정사항이었고, 그에 관련된 제반조치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회의가 소집된 것이었다. 덕분에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러한 회의의 성격상 회의가 1시간에서 1시간반을 채넘지 않은채 빨리 끝날수 있었다고 예루살렘 재판정에서 증언했다. 그리고 참석자들 역시 이 회의에서 논의되는 이송과 격리가 곧 학살을 의미함을 모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회의 참가자였던 4개년 경제계획부 차관 에리히 노이만은 전시경제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함을 언급하면서, 적어도 전쟁이 끝날때까지 학살을 미루거나, 불임등의 조치를 통해 대체할 것을 제안했고, 하이드리히는 이에 대해 "죽음이 최선의 불임"이라고 일축했다. 만약 이송과 격리가 곧 학살을 의미하는게 아니었다면 저런 문답은 애당초 뜬금없는 것이 었을것이다. 

따라서 반제회의는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결정한 회의가 아니라, 이미 내려진 친위대의 학살결정을 다른 부서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회의였으며, 기존의 게토가 소개되기 시작한것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42-42년의 게토의 위생관리 문제 때문이 아니라 소련을 패배시키는것이 실패한데 따른 정책노선의 변환이었던 샘이다.


근데 자뻑하는 눈의 여왕이라는 닉

혹시 2013년의 본인임?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5/16 00:45 # 답글

    수정주의자들에게 말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 난 깊게 들어가보지 않았지만 홀로코스트를 증언한 사람들, 겪은 사람들, 기록들, 사진들, 영상들, 역사책과 논문들, 학자들은 전부 잘못된 겁니까? 빼도박도 못한 것들인데요? 나치의 악행이 딱 봐도 뭔지 아는데도 이렇게 굽니까? 홀로코스트를 다룬 유대인 단체들, 할리우드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건 그렇다 칩시다. 핀켈슈타인처럼 홀로코스트를 산업화 + 악용화, 선전화, 정치화 등. 정당한 비판을 하면 모를까... 그도 홀로코스트는 맞다고 합니다. 난 홀로코스트를 조금만 접했습니다만, 집시, 장애인, 유대인, 공산주의자, 노동자, 사회주의자 등 계획적으로 학살된건 맞습니다. "

    에휴... 저처럼 무식한 사람이 봐도 홀로코스트 수정자들은.... 정당한 비판자라면 모를까. 참... 나...
  • 역성혁명 2017/05/16 06:40 # 답글

    차별 -> 분리 -> 탄압 -> 학살 이라는 반복적이고 순차적인 단계로 민족적 화풀이라는 거대한 살인기계가 완성되었죠. 그러고보면 나치의 화풀이는 나치와 궁둥짝을 흔들었던 일본제국주의 묵인/방조 하에 이루어진 관동대학살, 난징대학살에서도 비슷한 고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rumic71 2017/05/16 18:13 #

    독일은 계획적으로라도 했지요. 일본은 그냥 뽕맞은 상태.
  • 역성혁명 2017/05/16 18:39 #

    형식적인 의회민주주의마저 군부와 흑룡회에 의해 미쳐날뛰어 나라 전체가 뽕맞았으니 말 다했죠.
  • 2017/05/16 10:1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iamonds8 2017/05/19 15:58 # 삭제 답글

    저정도면 인간을 포기하고 싶단 말을 참 자세하게 말하는 거 같습니다.
  • 자뻑눈 2017/05/23 08:03 # 삭제 답글

    이 수용소 이주와 수용 결정 자체가 당시까지 인류사에 흔치않던 비인간적 대규모 학대에 속하며 결과적으로 학살로 나타남. 스탈린이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완성하고 사회불만 세력을 말살하려 세웠던 굴락과 그 목적과 방법이 완벽하게 일치함.

    스탈린도 공장식 개스 학살을 이용하여 사회불만 세력을 청소할 필요가 없었듯 나치도 그럴 필요없이 유태인들을 수용소에서 서서히 멸절시켜가고 있었음. 이것이 아우슈비츠 같은 시설이었고 이렇게 때문에 당신들이 찾는 정밀하게 밀폐된 대규모 개스실이나 엄청난 규모의 화장시설이 존재하지 않은 것임.
  • 자뻑눈 2017/05/23 08:07 # 삭제 답글

    케케로....2013과 2017이 다른가? 사실과 이성보다는 니 꼴난 자존이 중요하니 2013과 2017의 작자가 의심스러 뵈는 것이다. 미치겠나?...으히히히히
  • 자뻑눈 2017/05/23 14:31 # 삭제 답글

    케케로 그렇지 않은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었고 수십년간 되풀이 되어왔다. 패자는 전멸했기에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서방세계의 사회 경제 문화적 기반은 이미 유태계가 장악한지 오래다. 거기에 국가 이익을 위해 2차대전이라는 꿀단지 전쟁에 참여한 미국에게 홀로코스트 보다 더 성스런 명분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진실과 사실을 말 할 용기는 없을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묘사하는 그 과정이 합리적 이성과 그 증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서 수백개의 유태 마을을 불태웠다. 리가 강가에서 수만의 유태계 촌민들을 학살했다. 이런 홀로코스트의 모습은 사실적이며 개연성 또한 충분하다. 가스실에 쳐넣고 독개스로 하루 수천명씩 죽였다니 도대체 그 개스실은 어디에 있는가? 케케로 니가 제대로 완벽하게 밀폐되고 누가 보더라도 대규모 학살이 가능한 개스실 사진 한장이라도 제공 할 수 있는가? 없다. 너 뿐 아니라 이세상 아무도 그런 사진은 제공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규모의 개스실은 존재 했을 것이다. 죽어가는 병약자와 전염병 보균자를 손쉽게 처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공장식 도축으로 과장한다는 건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정도 규모의 엉성한 개스 체임버는 발견 되었고 지금도 그것을 홀로코스트의 산 증거로 금지옥엽으로 모셔서 사람들에게 관람하게 한다. 그러나 그 엉성한 방에 첨 들어서는 순간 이건 아닌데 라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그방의 옛날 사진엔 창문마저 달려 있었다. 어느 때인가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발라버렸다.

    케케로 어리버리 등신들 앞에서 내세우는 꼴난 네 자존심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실을 탐구해 보자는 진지한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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