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벨기에의 중립은 실패했는가?


독일과 프랑스사이의 저지대에 위치한 벨기에는 1839년 독립한 이래 1914년까지 80년 가까운 중립국의 지위하에서 평화를 누렸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독일의 침공을 받은 뒤, 이 중립국의 평화는 위태롭게 위협받았고, 결국 1941년 또다시 독일의 침공을 받고 말았다. 왜 벨기에는 두차례에 걸쳐서 독일의 프랑스를 향한 침공루트가 되었을까? 혹자는 벨기에가 중립을 선언한 주제에 스스로의 방위 역량을 키울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비난한다. 허나 이것은 벨기에라는 소국이 지니고 있는 자원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벨기에는 스위스처럼 방어에 용이한 폐쇄적인 국경을 지니지도 않았고, 벨기에를 사이에 둔 양 강대국에게 지형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양 강대국의 전쟁에서 혼자 힘으로 버틸만한 체급이 된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벨기에가 오랫동안 평화에 젖어있어 스스로의 국방정책을 도외시했다는 로스테인의 비판은 지나치다고 할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질문을 바꿔 "왜 중립이 실패했는가"가 아니라 "왜 80년동안이나 중립을 유지할수 있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적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벨기에의 독립시기부터 중립을 보장했던 국가들, 그 가운데서도 영국에서 찾을수 있다.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문제일수 있지만, 벨기에의 중립은 영국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였다. 루이 14세부터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벨기에를 장악하려는 프랑스의 시도는 영국에게는 근본적인 위협 그 자체였다. 어느 국가이든 벨기에를 비롯한 저지대를 장악한 국가는 어렵지 않게, 영국 본토를 위협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영국에게는 벨기에가 유럽의 어느 강대국 손아귀에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보의 핵심적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차라리 영국이 벨기에를 장악하는 것도 해결방안이 될수 있었지만 그런 행위는 이 지역의 중요성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강대국들로부터 우려를 불러일으키기 쉬웠다. 따라서 영국이 벨기에 문제에 대해서 내릴수 있는 해답은 독립국으로서 벨기에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벨기에의 중립과 안보의 보증자였고, 영국의 국력이 유지되는한 벨기에는 어느 강대국에게도 침해받지 않을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미일안보조약을 연상시키는 양국간의 관계속에서 벨기에는 평화를 누릴수 있었다. 사실상 이시기에 벨기에는 영국과의 동맹 아닌 동맹에 있었던 샘이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의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이 관계는 처음으로 직접적인 시험을 경험했다. 벨기에는 지리정치적 용이성으로 인해 프로이센과 프랑스사이의 전쟁에서 전장이 되는 것을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이센과 프랑스 그 어느쪽도 벨기에를 침공함으로써 영국을 도발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벨기에는 나폴레옹 전쟁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강대국간의 충돌을 무사히 비켜갈수 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그 이후였다. 이는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 였다. 한편으로 영원히 유지될 줄 알았던 영국의 패권이 늘어가는 패권도전국들의 숫자와 국력으로 인해 한계가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국에 대한 유력한 도전국이었던 독일의 상승이었다. 이 두가지 상황이 결합되어 독일의 오판을 불러왔다. 독일은 또다시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된다면 벨기에를 침공루트를 사용할 생각을 했는데, 그들은 이제 약체화되어가는 영국이 벨기에로의 침공에 대해 손을 쓰지 못할 것이기에, 사실상 독일의 유럽대륙내에서의 패권을 인정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고 영국과의 전쟁으로 확대된다 할지라도 승리할 것이라는 근거없이 낙관적인 전망에 기반해 전쟁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낙관적인 전망은 여전히 벨기에를 영국방어의 중요한 거점으로 보는 영국의 의지를 오판했고, 중립국을 침공한 무뢰한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야기하며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다. 무방비 상태의 중립국에 대한 침공이 가져온 독일의 국제적 평판의 하락은 이후 1차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다른 중립국들에 대한 독일의 외교적 협력시도를 제약하는 족쇄로서 작용했다. 

전쟁이 끝난뒤 벨기에는 중립국의 지위로 돌아가지 않았다. 영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중립국의 지위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세 판단과 독일로부터 영토적 경제적 배상을 얻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때문이었다. 이것은 벨기에가 여전히 중립국으로 남기를 바라는 영국보다는 경제적 배상을 위해 루르지역을 공동으로 점령했던 프랑스와의 군사협정을 통해 협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만약 프랑스가 영국을 대신해 벨기에에 충분한 안전보장을 약속한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프랑스가 그럴만한 여력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심지어 독일의 공격에 대비한 마지노 요새를 벨기에 국경까지 확대하는 문제를 거부했는데, 이는 프랑스가 벨기에까지 요새를 연장 배치하기에 충분한 자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기에 입장에서 프랑스의 결정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벨기에를 전장으로 삼겠다는것에 다름 아니었다. 

프랑스의 안전보장을 확신할수 없었던 벨기에는 다시 자주국방을 기조로 내걸고 중립으로 돌아섬으로써 프랑스와 독일간의 전쟁이 있을시 휘말리는 것을 필사적으로 피하고자했다. 독일의 재무장이 갈수록 분명해지면서 벨기에의 중립에 이제 안달이 난건 프랑스였다. 때문에 프랑스는 이제 입장을 바꿔 보다 벨기에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협력에 나설 준비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독일이 얌전히 비껴가주길 기대할수 없는 상황에서 벨기에는 그런 프랑스의 조건이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협정이 체결되려는 찰나에 히틀러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비무장지대였던 라인란트에 보란듯이 군대를 주둔시켰고, 영국과 프랑스를 한순간에 겁쟁이로 보이게 만들었다. 겁에 질린 프랑스를 목격한 벨기에는 타조처럼 눈과 귀를 가리고 머리를 땅속에 처박았다. 그들은 다시 자주국방을 기반한 중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20년동안 방황끝에 마지막으로 채택한 중립의 말로는 다시 한번 독일의 침공로가 되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벨기에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벨기에중립의 실패를 온전히 벨기에 스스로의 책임을 돌리는것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알수있다. 우선적으로 그것은 안보를 보장해주던 국가의 몰락과 도전국의 상승이라는 국제적 구조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였다. 더군다나 1차세계대전은 오판과 오해의 연속으로 우발적으로 일어난 전쟁이었다. 벨기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왜 아무도 확실하게 예측하지 못한 전쟁에서 독일의 오판에 대해 대비하지 않았냐는 식의 추궁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종류의 오판에 대응할 방법이란 얌전히 그 오판을 수용해주던지, 아니면 대비되지 않은 오판에 대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것 뿐인데, 벨기에는 후자를 택했다. 

물론 1차세계대전 이후의 상황을 놓고 본다면 벨기에의 외교는 근시안적인 실수가 많았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그들은 자제해야할때 욕심을 부렸고, 안보가 필요하지 않을때, 안보를 갈구했으며, 타국과의 연대가 고립을 택했다. 로스테인은 벨기에가 근시안적인 이익에 집착을 하지 말고, 종전이후부터
서유럽의 국경조약인 로카르노조약이 체결되던 비교적 기회가
있었던 기간 동안 타협을 내지못하는 영국과 프랑스사이에, 그리고 잠시나마 이성적이었던 독일과 승전국사이에 중개자역할을 고수하는 방법도 있었음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하지만 어느 국가가 벨기에에 비해서 딱히 나았다고 평가할수 있을까? 정작 영국과 프랑스는 필요한 순간에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그들은 국제연맹을 통해 한국가에 대한 도발은 연맹 모두에 대한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 선언했지만 일본, 이탈리아, 독일에 이르게까지 국제연맹의 규범을 무시한 국가들을 방치했다. 결국 그결과는 두번째 세계대전이었다. 벨기에의 사례는 전간기를 다루는데 있어  "강자가 존중하지 않는 원칙은 약자에게도 존중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라는 E.H.카의 교훈을 재확인시켜주는 사례다.
  


덧글

  • 전위대 2017/04/21 21:28 # 답글

    1. 마지노선을 벨기에까지 연장하겠다는 건 벨기에가 거부한 걸로 알았었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2. 여튼 전쟁질하면서 낙관주의 망상하는 건 멸망의 지름길.
  • Cicero 2017/04/21 21:36 #

    1.36년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29년에 처음 착공했을 당시에는 프랑스가 거부했죠.

    2. 전쟁이란건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죠.
  • ㄴㄴ 2017/04/21 22:44 # 삭제 답글

    현재 시진핑이 원하는것은 당나라 시절의 중화 조공 책봉질서 복원인데 그걸 한국이 감내할수 있을지는 잘.. 중국에서는 현재 베스트팔렌 체제의 외교관에 대해 부정적이면서도 동시에 힘이 곧 주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더군요.
  • Moment 2017/04/22 01:13 # 삭제 답글

    음? 폴란드 침공 시점에서 벨기에의 중립화는 불가능한것 같은데 추축에 가입하는 것 말고 전쟁을 회피할 다른 해결책이 있었나요?
    영-프와 직접 동맹관계에 있었더라도 침공 회피는 불가능해 보이고, 추축에 가입했다면 위성국가로 전락했을텐데요..
    제게는 벨기에의 문제라기보단 영-프 외교전략의 실패라고 해석됩니다.

    "독일과 승전국사이에 중개자역할을 고수하는 방법"으로 어떤걸 제시하고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군요.
  • Cicero 2017/04/22 01:50 #

    일단 나도 본문에서 결론 내렸다시피 스스로가 만든 규범을 스스로 준수하지 못함으로써 생긴 영프의 외교적 실패가 맞다고 봅니다. 그것이 벨기에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면 벨기에의 근시안적 외교정책을 영프의 외교적 실패들이 촉진하는 모양새가 됬다는 거고요.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나치 독일앞에 벨기에의 중립화시도는 바보같긴 합니다만, 당시 벨기에 지도자들은 라인란트 위기이후부터 타조식 해법-머리를 처박고 중립을 유지한체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린다-이 자신들을 이 분쟁에서 거리를 두게 해줄거라고 믿었던겁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로스테인이 벨기에가 독일과 승전국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수 있던 시기는 독일이 잠시나마 이성적이었던 시기, 보다 구체적으로는 히틀러가 집권하기전 바이마르공화국이 로카르노조약을 체결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나치스 집권 이후로는 중개자를 말할 필요가 없죠. 로스테인은 로카르노 조약 시기에 영토조약의 보장을 촉진하고 독일의 적대감을 감소시키는 한편, 영국과 프랑스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형태로 움직일 여유공간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 긁적 2017/04/22 01:37 # 답글

    헐. 이 경우에 중개자 역할을 하는 선택지라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히틀러의 폴란드침공을 중개역할 정도로 막을 수 있었을까요??? 물론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시 영국이 선전포고한다'라고 판단했으면 폴란드침공을 하지 않았겠지만 히틀러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가 쫄았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벨기에가 이런 히틀러의 판단을 바꿀 만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가짜전쟁 타이밍에 프랑스 정부에다가 '독일 쟤들 그로기 상태임. 빨리 가서 때리세요' 이런 수준의 정보를 얻는 데다가 프랑스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도 없구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이상 벨기에는 독일의 침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중재 혹은 중개를 통해서 독일의 침공을 피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에방에말요새 축성에 독일 업체를 끌어들이지 말지 -_-....)
  • Cicero 2017/04/22 01:42 #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로스테인이 벨기에가 독일과 승전국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수 있던 시기는 독일이 잠시나마 이성적이었던 시기, 보다 구체적으로는 히틀러가 집권하기전 바이마르공화국이 로카르노조약을 체결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나치스 집권 이후로는 중개자를 말할 필요가 없죠
  • 긁적 2017/04/22 02:04 #

    바로 위의 덧글과 같이 읽으니 이해는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개자' 혹은 '중재자'라는 명칭이 좀 문제 같네요. 결국 Cicero님의 포인트는 '자기 목소리를 내자'라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사실 그것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자기 목소리 내서 성공하건 실패하건 해보고 실패하는 게 안 해보고 실패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어차피 약소국의 외교라는 게 강대국의 선택지를 상수로 둔 상태에서 뭘 골라야 하는 것일텐데 적어도 '뭘 고를지' 그리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주도적으로 생각해야겠죠. 후자의 경우는 강자들한테 알려놓아서 나쁠 거 없고.

    다만..... 개인적으로는 히틀러의 부상이 일종의 '재앙'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미술학교 합격했으면 ㄲㄲ) 이 생각이 맞다면 여전히 벨기에가 외교를 쩔게 해도 답은 없었겠죠. ^^;
  • Cicero 2017/04/22 09:47 #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벨기에의 경우, 자신들과
    같은 약소국 의 생존이 "안정적인 국제질서"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보다는 근시안적이고 즉물적인 외교에 매달린것이 벨기에의 문제였다는 거죠. 물론 거기에는 강대국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아 이를 부채질한 영프의 문제도 동시에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Moment 2017/04/22 10:52 # 삭제

    제 생각도 긁적님과 비슷합니다.
    로카르노 조약 시기의 성과가 그게 대공황+나치스 콤보 앞에서 얼마나 유효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는것 같은데,
    으음... 가능할까요? '재앙'을 피할 길이 없어보이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벨기에에게 책임을 전가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 Moment 2017/04/22 10:56 # 삭제

    로카르노 조약 이후 독일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베르사유 조약의 부담 경감과 동유럽을 떼 줘서 달래는 형식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벨기에의 역량으로는 사용 가능한 옵션이 아닌것처럼 보이거든요. 원하는 바를 영-프에 강요할 역량이나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심지어 자칫하면 달래는게 결국은 뮌헨조약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고...
  • Cicero 2017/04/22 11:08 #

    사실 벨기에의 국력을 생각한다면 뭘해도 상황을 결정하지 못했을것이라고 보는게 맞긴 합니다. 그럼에도 로스테인이 이러한 주장을 한건 벨기에가 중개자로 남음으로서 상황을 결정하진 못했을지라도 보다 우호적인 결정을 하기위한 환경을 조성하는데는 이바지 했을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표현으로써 위와같이 언급했던거죠. 로스테인의 입장은 상황에 대해서 벨기에가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좀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접근에 가까워 보입니다.
  • 부들 2017/04/22 11:04 # 삭제 답글

    부들부들 부들러
    조선중립화론의 선구자이며 그밖에 이 이론을 지지한 사람으로는 유길준 등이 있다
  • 슬픈눈빛 2017/04/22 20:15 # 답글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가 오버랩 되는 군요. 이 경우 강대국의 필요에 의한 신생 중립국 이라기 보다 부속국 느낌이지만(...)
  • Cicero 2017/04/22 21:22 #

    한쪽은 분단이라는 형태로, 한쪽은 중립화라는 형태로 어떤 목적에 따른 신생독립국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유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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