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적 성격을 지녔던 북한의 일제청산 ㄴWW 2

전 웅기경찰서장이었던 우메다가 피난길에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1938년 적화 분자 대소탕 작전 당시 그가 검거했던 조선인 보안대장이었다(...)

보안대장은 "내 얼굴을 기억하는가?"라며 물었다. 우메다는 그를 지긋이 올려다 보고서 "모른다라고 했다. (...)부대장은 그의 옷을 벗겼고, 옆에 있는 여인네가 신고 있던 다 떨어진 게다를 줄에 꿰어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당신은 7년 전 우리를 이렇게 해서 시가지를 끌고 다녔다. 기억나지 않는가?" (...)그때 부락사람들이 강변에서 내려왔다. 맨앞에 선 노파가 우메다를 보자마자 마치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한 손에 쥔 빨래방망이로 그를 계속 후려쳤다.(...)부대장은 노파를 말리며 (일본인) 피난민 무리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이 노파의 아들은 우메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무고한 죄로 검거되어 심한 고문 끝에 죽었습니다. 우리 고향을 훌륭하게 만들고자 했던 최고의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불쌍한 일반 일본인들에게는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중앙에서 강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괴롭히고 조선을 파괴한 '경관과 군인'은 결ㅋ토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부디 여러분, 우리들의 기분을 양해해주기 바랍니다. 우메다는 이 노파의 아들만이 아니라 우리 형제를, 동지를 수천 명이나 사회에서 매장했습니다. 이 깊은 한을 해아려주기 바랍니다. 이사람은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이 행색으로 마을을 돈 뒤에 다음 마을로 보내야 합니다. 
(일본인들은) 북한과 남한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은 판이하게 달랐다. (...)미군정은 일본인을 상대로 한 사적인 테러 사건을 엄금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조선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조선총독부 고관들을 단죄하기는커녕 어발쩡 풀어준 것에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일본인을 옹호하는 듯한 미군정의 조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소군정이 식민 지배의 실체였던 군인, 경찰, 관료들을 압송, 투옥, 억류하면서 지배 네트워크 자체를 해체해 버렸다. 즉 오로지 노동력 확보에 열을 올리던 소련군은 이들을 북한 내 다른 지역이나 만주, 사할린, 소련 등지로 함부로 동원해갔고, 북한에 새롭게 대두한 조선인 정치세력은 구 지배세력에 대한 단죄를 남한에 비해 훨씬 강도 높게 실시할 수 있었다(...)

(...)소련 점령 당국은 진주하자마자 1945년 8월부터 1946년 2~3월에 걸쳐 18~40세에 이르는 남성에 대한 대대적 '사냥'을 통래 일본군을 1,000명 단위의 작업대로 편성해 시베리아 등지로 보내버렸다. 그 밖에 행정관료, 경찰, 사법관계자들은 일반인과 분리하여 수용한 뒤, 그중 일부는 군인과 함께 타지로 압송하거나 투옥했다. 이들의 규모는 대략 6만~7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편 조선인 정치세력에 의해 투옥된 일본인들도 있었다...신의주형무소와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일본인들의 형량과 유죄 선고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야마시타 히데키, 징역 5년 확정

다년간 법관으로 조선인을 압박하였고, 특히 조선인 사상범(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등 가혹한 판결을 내린 '악질 전직죄'에 상당함.

  •  하마다 미사코, 징역 5년 확정

훈도 재임 중 조선인 아동이 짓궂은 장난을 하였다고 소화전을 뿌려 상해를 입힌 것은 조선인을 열등시한 것으로 '상해죄'를 구성함. 

  • 하마다 이치조, 제1심 무기징역 항소 중

20여 년 전 국경경찰로 근무 중 누누이 경찰공로장을 받은 것은 신성한 조선 독립을 위한 혁명 분자를 박해한 것으로서, 이것은 증오할 만한 '살인죄'가 됨.

  • 이나다 교이치, 제 1심 지역 10년 항소 중

대정 8년(1919) '조선 독립만세 사건' 시 소방대원으로 정주 시내의 경계를 담당하였는 바 곳곳에서 소동 중인 조선인 수 명을 살해한 것은 조선 독립 혁명가에 대한 '살인죄'를 구성함.


-이연식 저, '조선을 떠나며'중에서-



위와 같이 북한지역에서의 일제청산은 노동력 강제징용을 필요로 했던 소련 군정기구와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보복을 규제당하지 않았던 조선인 정치세력들에 의해 남한 지역에 비하면 꽤나 가혹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이같은 성격은 오늘날까지 퍼져 있는 "북한은 일제청산에 적극적이었다."라는 신화를 생성하는데 이바지 했다고 생각된다. 

덧글

  • Ladcin 2013/04/04 14:09 # 답글

    문제는 철저한것도 아니였고...
  • Cicero 2013/04/05 08:20 #

    대신 가혹했죠.
  • 대공 2013/04/04 14:18 # 답글

    속내가 어떻건 간에 그래도 뭐라도 하긴 했네요.
  • Cicero 2013/04/05 08:21 #

    동상이몽이던 소련과 조선인들의 합작이라고 할수있죠.
  • 2013/04/04 14: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okbusin 2013/04/04 14:58 # 삭제 답글

    대중정치 측면에서 보면 저렇게 카타르시스를 대중들이 일단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권지지도를 가질 수 있지요.
  • Cicero 2013/04/05 08:22 #

    그게 북한 초기역사에서 굉장한 어드벤티지가 됬었다고 봅니다.
  • 무르쉬드 2013/04/04 15:06 # 답글

    안한 동네에서 깍아내려보았자 안한 것은 사실이고, 형식이라도 했어야 했음

    그 형식적인 조사마저 작살난 것에 비해 진실은 시궁창이라도 해버린 동네가 신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해방이후 한국인이 바란 것은 정의라기보다는 한풀이에 가까웠으니..
  • 인간성기사 2013/04/04 16:55 # 삭제

    그러니까 지금 당장 친일파 없는 북한 가서 사세요
    친일파 후손이 권력잡았다는 남한에서 구질구질하게 인터넷질 그만하시고

    ^ ____ ^
  • 무르쉬드 2013/04/04 17:30 #

    푸하하하하

    ^___^
  • Cicero 2013/04/05 08:27 #

    일본식민통치기구에 대한 심판은 없었지만, 적산몰수와 반민특위 형태를 통한 청산은 남한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이 복수를 원하니 정의보단 복수라는 식의 접근은 별로 온당치 못해보이는군요.
  • 무르쉬드 2013/04/05 10:53 #

    반민특위는 실질적으로는 실패했으니 말입니다. 적산몰수건 뭐라고할 정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미친 짓이라지만 해방 당시의 상황에서는 쇼라도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럽 예를 들어볼까요? 프랑스가 연합군에서 해방될 때 독일군의 애인이던 여인들이나 협조했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진으로 찾아보시면 압니다.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반민특위의 실패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 정의 실현을 위해 중단시킨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건 그시대 정치가가 후대 정치가들에게 떠넘긴 짐같다고 생각합니다. 버릴려고 해도 안 버려지는..



  • Cicero 2013/04/05 12:36 #

    반민특위가 많이 부족했던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대중의 분노를 다스리기위해 굿판의 푸닥거리나 다름없는 짓을 과연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그 푸닥거리가 정작 다음역사에 끼친 악영향을 생각하면 더 그렇죠
  • 무르쉬드 2013/04/05 13:04 #

    프랑스가 겪는 부작용은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그건으로 따로 포스팅 해주셨으면 더욱 감사드립니다.

    프랑스는 푸닥거리를 한 부작용을 겪은 셈이고, 남한은 들해버린 부작용을 겪은 셈인데, 한국은 비교하기 좋은 대상이 옆에 있어서 더 부작용의 생명을 길어지고 있죠.

    남한 정치 사회적 발전에 해가 되는 존재가 옆에 있는 탓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한국이 겪은 부작용도 가볍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뭐 과거로 돌아가 고칠 수 없는 일이니 후인들에게 짐을 남겼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풀지 그냥 묻어두고 갈지는 제 식견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정도입니다.

  • Cicero 2013/04/05 14:01 #

    문제는 북한이 정말 좋은 비교의 예였냐는 겁니다. 북한의 일제청산은 가혹할 지언정, 철저하지 않았고, 결국 인적청산은 있을지언정 통치의 상당부분에서는 일베의 그것을 계승하게 됬죠.

    한국이 과거사 청산이 잘됬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과거사청산을 부러워해야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 무르쉬드 2013/04/05 14:23 #

    비교 당하기 좋은 대상 혹은 경쟁하는 대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단시간에 쓰는 거라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겉모양새 혹은 첫인상에 크게 좌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북한의 청산작업은 내부가 부실해 보이는 건물이라도 겉으로 보이기에는 그럴듯 해보이고
    남한의 청산 작업은 허름해 보이는 건물에 비유하죠. 이런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데 비교 당하기 좋은 대상이죠.

    다시 쓰지만, 이 문제가 생명력을 가지고 짐이 되는 것은 속은 부실해도 겉은 비까뻔쩎거리는 건물이 여전히 서 있는 탓도 있습니다.
  • 천지화랑 2013/04/04 16:28 # 답글

    정작 일본인 기술자들은 자의건 타의건 꽁꽁 붙잡아둬서 전후 일본은 이 부분에서 두고두고 불만을 터뜨렸죠 ㅎㅎ
  • Cicero 2013/04/05 08:29 #

    하지막 정작 북한지역에서 억류된 일본인 기술자들은 자기전공분야도 아닌 부문에서 강제노역당한경우도 적지 않았다는.ㅋㅋ
  • 검투사 2013/04/04 16:56 # 답글

    지금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천황 ->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
  • 無碍子 2013/04/04 20:01 #

    국가신도=>주체사상
    군국주의=>선군주의

    요것도 있습니다.
  • Cicero 2013/04/05 08:30 #

    사실 남북한 양국은 비교적 오랫동안 추축국적인 유산을 공유해왔으니 말이죠. 북한이야 현재진행형이고.
  • ㄱㄱ 2013/04/04 17:19 # 삭제 답글

    저렇게 해봐야 친일파 청산이 아닌 것이,
    일본인은 일본인이지
    조선인 친일파가 아니니까요.
  • Cicero 2013/04/05 08:30 #

    그래서 일제청산
  • 零丁洋 2013/04/04 19:22 # 답글

    사실 정확한 청산은 쉽지 않게죠. 하지만 포퍼먼스는 확실해 보이는군요.^^
  • Cicero 2013/04/05 08:31 #

    퍼포먼스에는 충실했던 거죠.
  • 지나가던과객 2013/04/04 20:38 # 삭제 답글

    북한의 일제 청산도 소련이 다 했군요.
    그러고서 저희들이 했다고 뻐기는게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 행인1 2013/04/04 22:56 # 답글

    사회주의자들에게 가혹한 형량을 때린 법관이랑 훈도의 형량이 똑같다니 참...;;;
  • Cicero 2013/04/05 08:31 #

    그래서 꽤나 일괄성 없는 보복적성격의 조치였다고봅니다.
  • 세피아 2013/04/04 23:40 # 답글

    뭐... 저런 골때리는... ㄱ-
  • Cicero 2013/04/05 08:32 #

    확실히 분노와 보복이라는데서는 만족감을 주는 대목이니 말이죠.
  • 남한탈지구 2017/09/08 18:09 # 삭제 답글

    몸과 마음을 다 놨다. 세상의 문제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내가 원하는 행성으로 가겠다.
    이 행성은 아무도 없다.
    외롭다.
    '아사'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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