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보는 한국의 반미주의 정치

반미주의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또다른 극적인 반전의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한국의 반미주의는 필리핀과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필리핀의 높은 수준의 반미주의가 1980년대를 거쳐 오늘날의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이르렀다면, 한국은 그 반대다. 1945년부터 80년까지의 한국을 특징지었던 강한 친미성향은 1980-90년대의 미국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대체 되었다. 2002년 Pew의 세계 여론 조사 프로젝트의 자료는 이러한 성향이 오늘날에도 분명히 남아있음을 확인해주었다. 중동을 제외하면 오직 방글라데시와 아르헨티나만이 한국보다 더 낮은 미국에 대한 선호도를 보였다. 필리핀과의 대비는 특히 강렬하가. 필리핀인들은 단지 7%만이 미국에 대해 비호의적인 관점을 보인 반면, 한국은 44%가 그런 관점을 취했다.

지난 30년간의 한국 "반미주의의 역사"에서 이 극적인 변화의 원인을 무엇일까? 필리핀과의 대조는 다시 한번 시사점이 될수 있다. 마르코스의 축출에 뒤이은 필리핀의 중도적인 연합정부는 공산주의 반군과 맑스주의적 반미주의의 주요한 전파자인 다른 좌파 분파들을 공격적으로 억압했다. 장지적인 경제적 필요와 이해로 인해 연합정부는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필요로 했고, 이 관계는 반 마르코스 운동을 추동했던 반미감정을 신 정부가 유지한다면 위험에 처할수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필리핀 반미주의의 극적인 하락은 우선 마르코스 이후 지도층들의 전략적 선택-미국과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는 동안에는 국내의 주도적인 반미주의 주장을 침묵시키는-이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사례는 집권한 정치 엘리트들보다는 대중운동의 영향에 더 관련이 깊다. 2차세계대전 이후 시기의 유달리 긍정적이었던 한국의 대미감정에 대한 설명은 분명히 이목을 끈다: "반공주의의 유산과 한국전쟁의 기억은 수천명의 젊은이들의 희생과 수백만 달러의 지원으로 한국을 지지해준 미국에 대한 진실된 애착을 낳았다." 신기욱이 설명하듯: "과장할것도 없이 많은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친구 이상으로 처음엔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이어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구해준 구원자였다." 이러한 관점은 대중적 반향일뿐만 아니라, 이시기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적의로 가득찬 반공주의군사정권에 의해 공식 이데올로기로 심어졌다.

미국의 대중적인기는 심지어 1970년대에 탄생하여 발전한 이런 반민주적인 정권에 대항하는 세력들 사이에서도 높은 수준으로 남아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널리 퍼진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미국의 민주주의적 이상이 민주주의운동을 싹티우는 것을 강력히 지지하는게 있다는 추측에서 였다. 이 모든 것은 1979-81년간의 일련의 위기로 인해 바뀌었다. 위기는 10월 26일, 대한민국의 장기 독재자인 박정희가 임살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최규하 총리는 대통령 대행으로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꽤나 마이너한 인물이었던 전두환 소장을 박대통령 죽음의 수사책임자로 임명했다. 상황이 정상으로 회귀하는 듯 보이던 12월, 군내부의 쿠데타로 전두환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한국의 권력구조를 뒤흔들면서 무대에 올라섰다. 미국 대사 윌리엄 j. 글라이스틴의 말을 빌리면 쿠데타는 한국을 "공식적은 국가지도자인 최 대통령과 실질적인 권력자인 전장군의 이중 권력체계"로 몰아갔다.

1980년 초까지만 해도 정치범이 석방되고, 대학문이 다시 열리고, 최대통령이 민주적개혁 계획을 발표하면서 희망적이었다. 이중 권력체제에도 불구하고, 최규하와 전두환 모두 민주화과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때가 되면 직접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권력구조가 통합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권력을 재통합되었지만, 선거가 아닌 5월 17일의 합법적 쿠데타를 통해서 전두환은 이나라의 모든 통제권을 장악했다.

권력탈취에 대한 저항은 즉각적이고 폭넓게 나타났다. 전라남도의 광주는 반 전두환 저항이 일어난 최초의 도시중 하나였다. 학생들의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된 저항은 곧 수십만 시민들이 전두환의 집권에 반대하는 봉기로 발전했다. 전두환은 무력으로 대응했고, 병력을 보내 5월 27일 최후의 전투에서 2백에서 수천명 사이의 반정부시위대를 살해했다.

대중들 사이에서 퍼져있는 관점을 따르자면, 미국은 무장충돌을 중지시키기위해 개입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시기의 일반적인 관점이 무엇이었든 간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미국이 학살에 연루되었다고 믿었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을 국빈방문한것은 이 의혹을 확실시 해주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때부터 반 군사정권 저항세력은 강력하고 거친 반미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1987년 군사정권의 붕괴와 1980년대말과 1990년대초의 점진적인 민주주의 전환도 미국에 대한 반감을 허물지 못했다. 왜 아니겠는가? 이 일반적인 역학에 대한 해답을 나는 이장 전체에 걸쳐 언급했다, 황색혁명으로 영향받은 대중적 반미주의로부터 효과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필리핀의 반 마르코스 연합정부와는 대조적으로, 남한의 민주주의세력은 전환기와 새로운 민간정부의 합법적틀을 만드는 결과에서 미국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 효과적으로 결합했다.

대한민국의 민간통치와 반미주의의 공명사이에 있는 강한 이념적 연결은 가까운 시일내에 사라질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현 노무현정부의 주요인사들의 대부분은 민주화운동의 공훈자들로 정부내의 반미정서는 강하게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데이타와 최근의 사건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남을것이며, 가까운 시기에는 증대될 것이라는 시각을 지지해준다. 인구적으로 반미적 시각의 분포는 세대 현상이다. 고령의 한국인일수록 미국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며, 젊은 층일수록 반미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미국에 대한 선호-비선호 시각의 분포를 보면,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49 대 15의 비율을 보이며, 20대에서는 25 대 43의 비율을 보인다, 이러한 시각의 분포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세대교체는 대한민국의 반미성향의 극적인 상승을 예고한다.

최근의 사건에서는 북한이 대한민국에서의 미국에 대한 반감을 악화시키고 있다, 현재의 미국에 대한 반감의 핵심에는 한-미관계의 특성을 불평등성으로 인식하는 깊은 민족주의적 분노가 자리한다, 민주화와 빠른 경제발전은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자부심을 주었고, 이 자부심은 이에 따른 미국으로부터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 , 경제적 존중이 결여되었다는데서 깊게 상처받았다. 1990년대 중반 미국과 북한의 핵협상에 대해 쓴 글이긴 하지만, 신기욱의 조심스러운 강조는 현재 상황에도 적용된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동반자관계라는 서울과 워싱턴 모두로부터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최근의 북핵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은 여전히 결정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한국이 제외당하는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친미적으로 남아있는 보수 우파조차도 분노케 한다. 미국은 반드시 한국의 반미적 민족주의의 물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협의와 정책결정에 있어 보다 진실된 동반자관계로 나아가야 할것이다.


신기욱이 이 글을 쓴 이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아무런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은 결과로, 반미 성향의 증대로 이어질것으로 보인다.

-Peter J. Katzenstein 편, 'Anti-Americansim in World Politics'중에서-



덧글

  • 천지화랑 2013/03/25 16:26 # 답글

    그리고 어떤 분들은 무려 핵보유를 주장하고 계시니 이거 참 -_-;;
  • Cicero 2013/03/25 17:07 #

    어떤면에선 미국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욕구의 보수적 표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 Ladcin 2013/03/25 16:34 # 답글

    얽히고 설혔죠
  • Cicero 2013/03/25 17:07 #

    민족주의와 역사적 경험등등 복잡한 문제인데 해법은 오히려 단순할수 있다고도 생각되네요.
  • K I T V S 2013/03/25 17:01 # 답글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만 해도 제 주변에선 미국을 싫어하는 분을 찾기 어려웠는데... 오노사건이랑 주한미군 독극물 사건,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문에 석유에 불 붙듯 확 번져나간 것 같고... 근 10년 동안 절정을 맺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미국에 대한 호의를 적으면 돌이 날아 온 경험이 있었습니다..ㅠㅠ
  • Cicero 2013/03/25 17:06 #

    아무래도 부시정권 효과라고 봅니다. 2008년이후로 보면 pew글로벌 여론조사에선 한국의 친미성향이 꽤나 높게 나오니까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7:10 # 답글

    미국에 대한 호의를 가질 이유가 거의 없죠
  • 기어 2013/03/25 17:12 # 삭제

    북한이나 중국이랑 편먹느니 미국 자치령이 낫겠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7:14 #

    ㅋㅋㅋ 너는 혼자는 못사는구나 ㅋㅋㅋ
  • Cicero 2013/03/25 17:31 #

    사람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나는 호감을 가질 이유가 많다고 봅니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7:37 #

    호감이야 개인차이구요^^
  • 지나가다가 2013/03/25 18:24 # 삭제

    한반도 전국토가 공산화될 뻔한 것을 구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호의를 가지기에 충분한 것 같은데요.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8:29 #

    육이오때 중국 개입을 유도한거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돌지 않나요 ㅋㅋㅋ
  • 대공 2013/03/25 18:32 #

    호주도 미국하고 붙어먹는뎁쇼
    그리고 유도는 개뿔이 유도. 누가 북한한테 그 무기 다 대줬는데요. 미국은 핑계고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8:34 #

    ㅋㅋ 어차피 그 호의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할거면서 ㅋㅋ
  • Bluegazer 2013/03/25 18:52 #

    미국에 호의 갖고 혼자 못살아 붙어먹는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 = 호주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8:53 #

    ㅋㅋㅋ 잘못알고 있구나 ㅋㅋㅋ
  • Moment 2013/03/25 19:17 # 삭제

    혼자 어떻게 삽니까? 외교에 대한 감각이 없으세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5 19:20 #

    미국에 호의를 가지지 않는다고 외교를 못합니까? ㅋㅋㅋ

    미국은 우리한테 호의를 가지지 않아서 한국 이용하나요?

    한마디를 해도 딴소리하며 끼어드는 사람이 이렇게 많네요. ㅋㅋㅋ
  • 집정관 2013/03/25 19:38 #

    1) 육이오때 중국 개입을 유도한거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돌지 않나요 ㅋㅋㅋ
    →블모씨가 들이대다 탈탈 털린 남침유도설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2) 외교를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죠. 주변국을 보고 이야기합시다.
    혼자놀면 중국과 일본이 참 좋아하겠네요.
    (물론 좋아하는 이유야…….)
  • Bluegazer 2013/03/25 21:58 #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ㅋㅋㅋ의 갯수가 늘어나는구만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6 00:49 #

    ㅋㅋㅋ
  • 경찰아저씨여기요 2013/05/12 10:43 # 삭제

    진짜다! 진짜 간첩이 나타났다!

    아님면 민 뭐시기 뭔놈의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그 쪽 분들 중 한 분이신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5/12 10:57 #

    ㅋㅋㅋ
  • 기어 2013/03/25 17:11 # 삭제 답글

    그냥, 한국은 잘해주면 기어오르는 게 21세기 들어 유행한 모양.
    상대가 미국이 아니라 중국 혹은 소련이었다면 어찌됐을지 궁금해지네요.
  • Cicero 2013/03/25 17:30 #

    북한하는거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ㅋㅋ
    뭐 원래 국력이 신장될수록 존중받고 싶어하는건 만국 공통이라고봅니다. 중국만 봐도 그렇고.
  • LVP 2013/03/25 17:13 # 답글

    1. 그런걸 보면 옆집 불량학생은 참 골아픈 문제ㅇㅇ
    2. 그나저나, 아까있던 ㄷㅅ라는 한 ㅄ은 어디갔어? 예전에 광주 알카에다 드립치다가 정신승리하드만ㅋ
  • 零丁洋 2013/03/25 18:57 # 답글

    80년 광주는 미국이 자신을 도울 것이라고 믿었죠. 그러나 끝내 미국은 오지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를 통해 미국이 말하는 인권, 자유, 민주가 국경을 넘으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의 호의는 진정한 호의가 아니고 자신들의 필요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반미는 미국의 배척이 아니라 미국을 현실적인 존재로 파악하자는 의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Cicero 2013/03/25 19:11 #

    출발점은 몰라도 현재는 지나치게 반감으로 몰린 것같습니다.
  • shaind 2013/03/26 00:55 #

    미국이 말하는 인권, 자유, 민주가 국경을 넘어서도 허구가 아니게 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라크죠.
  • 광주유공자 2013/03/27 14:04 # 삭제

    80년 미국이 광주에 올수 없었지요...최규화가 승인한 계엄확대는 어째든 적법한 절차 였으니. 게다 시민들사이에 스며든 강경 극좌세력은 결코 미국이 사랑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으니. 인권, 자유, 민주는 잘먹고 잘 살자는 도구일 뿐이지 국가간의 실존을 넘어서 존립 할 수는 없겠지요...그건 막스의 이념도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으면 제국주의나 국가주의로 바뀌질 않습디까. 이상에 목매지 마시길 현실은 보다 더 장엄한 그 무엇이니깐
  • 트레버매덕스 2013/03/25 20:59 # 답글

    그러고 보면 트루먼이라는 양반은 생각할 수록 대단한거 같습니다. 원폭투하라든지, 한국전쟁참전이라든지
    한 사람이 역사를 바꿔놓은 결정들을 여러번 내리는게 쉬운게 아닌데 말이죠. "개자식들!! 당장 군대파견해!"
  • Cicero 2013/03/25 19:12 #

    아무래도 루즈벨트가 전시행정부를 이끄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신도 익숙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천지화랑 2013/03/25 21:16 #

    도련님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양복점 사장님의 위엄(....)
  • 지나가던과객 2013/03/25 19:12 # 삭제 답글

    우리나라에서 반미주의가 있다고 해도 미국입장에서는 변방의 번국이니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죠.
  • 집정관 2013/03/25 19:49 # 답글

    키케로님, 이 글이 나온 날짜를 좀 알 수 있을까요?
  • Cicero 2013/03/25 20:14 #

    책 자체는 2006년 2월 나온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들 저자가 서로다른 글의 모음이라 해당 글이 쓰인 날짜는 모르겠군요. 그냥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부터 2005년 사이쯤인듯.
  • 집정관 2013/03/25 20:17 #

    역시 그렇군요. 마지막 줄을 봐서는 이명박 정부 이후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여쭤 봤습니다.
  • Cicero 2013/03/25 20:37 #

    최근의 pew 서베이를 보면 한국의 반미감정은 꽤나-심지어 일본보다도-낮습니다. 2002년부터 2007년의 높은 반미감정은 당시 시대적 맥락의 결과였다고 보는게 정확하겠죠. 다만 향후 미국의 대외정책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의 반미주의는 잠복기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 골든 리트리버 2013/03/25 22:02 # 답글

    2002년의 반미감정 부상은 대북관계의 외형적인 개선에 따라 한미동맹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있지도 않은 위협을 과장해서 미국이 간섭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는 착각과, 97년 외환위기에 따른 "외세의 경제적 침략"라는 피해의식의 요소가 크다고 봅니다.

    최근 반미감정의 하락세에는 미국의 정권 교체보다는 잠재 위협으로 떠오른 중국의 국력 신장세와 상대적인 미국 국력의 퇴조, 북한의 핵실험과 거듭되는 군사적 도발이 더 크다고 봐야겠죠. 이라크전에 가장 민감한 중동에서는 대미 호감이 지지부진할 뿐만 아니라 부시 정권 때보다도 하락한 국가들도 있습니다.
  • Cicero 2013/03/25 22:18 #

    개인적으론 그걸 가속화시킨 촉매가 부시정부의 출범이었다고 봅니다. 대북관계의 외형적인 개선과 외세의 경제적 침략이라는 경계의식은 김대중 정부 전기간에 흐른 의식이었는데, 그게 폭발적으로 표출된건 2001~2년이다보니 말이죠.
  • 나인테일 2013/03/25 22:21 # 답글

    미국하고 한국이야 서로 이익에 의해 함께하는 관계이긴 합니다만 이는 쿨하게 딜이 안 되면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앞으로도 매우 오랜 시간을 친하게 지내면 서로 득이 될 사이라고도 볼 수 있는지라....

    자존심 없는 친미도, 머리 없는 반미도 싫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Cicero 2013/03/25 22:24 #

    "협력이란 계속되다보면 그자체로서 존재가치와 추동력을 지닌다" 한미관계는 딱 이표현에 맞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 긁적 2013/03/25 23:11 # 답글

    20대에서 25대 43?!?!?!?!?!?!?!?

    제 주변에서는 저렇게까지 극단적인 것 같지 않은데..;; 놀랍군요.
  • 카더라통신 2013/03/26 00:07 # 답글

    운동권에 발을 한쪽 담그고 살다 보니...

    미국에 대해서는 호의도 없고 반감도 없....
  • 반미-민주화는 무관 2013/03/26 03:32 # 삭제 답글

    2000년대 초반 대중적 반미감정이 고조된 것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준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근원을 찾다보니 그게 나온것이지 운동권세대를 제외한 한국대중은 민주화 운동세력과 같은 인식을 가졌다고 보기 힘들고 더욱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준 지속적 압력(때로는 한국의 집권층을 다루는 채찍으로 악용되기도 한)을 고려해 본다면 민주화=반미라는 공식은 의문스럽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반미가 확산된 이유를 들자면,
    1. 외환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미국의 실망스런 태도. 경제개방,외환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경제정책을 이식하기 위해 미국이 보인 태도와 최근의 글로벌경제위기에서 민주당인사들이 취한 태도의 차이를 보시면 이해될것.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이 많음.

    2. 냉전적 국제질서 해체로 한국이 미국 일변도의 외교관계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점. 공산권해체,유엔가입으로 외교상대가 확대됨. 특히 한중수교이후 급속히 진전된 교류확대로 중국특수를 누렸던 점. 대중 흑자무역구조 정착과 중국에 대한 경제적 우월감. 그리고 중국내 한국에 대한 우호감정 확대의 반사효과. 대중경계심이 낮아진 것.

    3. 부시정권기의 일방주의적 외교.

    4. 클린턴 정부 시기 김영삼 정부와의 느슨한 관계. 영변폭격에서 한국이 피동적으로 끌려간 것은 유명한 것이고 제네바합의 이후에 대북 지원에서 한국이 남북관계 진전없이 물주역할로 전락한것. 김일성 사망 이후 한국과의 정책공조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것. 통미봉남이란 말이 나올정도로 한미간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음. 이것이 김영삼의 외교적 미숙때문이기도 하지만 카터-클린턴을 이어지는 민주당의 비개입주의적 전통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고 봄.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저평가된 시기이기도 함. 중미간 줄다리기에 끼여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북한의 이상이 가장 그럴듯하게 실현된 시기.

    5. 일본의 반미감정의 유입. 한국 지식계는 의외로 일본의 풍조에 영향을 많이 받음. 일본어가독자가 많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선진국이기도 하기 때문임.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상당히 악화된 일본의 반미기류가 한국식으로 소화됨.

    6. 통상갈등으로 인한 일반 대중의 대미감정 악화. 담배,주류,쌀 등 서민에 체감적이고 선정적 이슈가 많았음. 소비자로서의 선택권 확대라는 측면에선 대중의 호응이 있을 법 하지만 오히려 반미감정이 악화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됨. 언론의 유도도 있겠지만 기호식품이 가지는 경제침탈의 상징성, 농촌에 대한 향수가 깊은 상경인구의 농업에 대한 감정을 건드린 것이라 봄.

    7. 국내적으로 운동권세대가 본격 사회주류로 등장하고 대중여론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된 것. 반미의 미디어차원에서의 확산

    8. 우발적이고 선정적인 미국과의 사건발생. 효순,미선양 사고 라든지 안톤 오노의 부정우승 등.

    9. 남북관계개선으로 인한 미국에 대한 재평가 확산. 더불어 이북의 논리가 확산되던 시기.

    10. 또 뭘까나... 대략 민심의 흐름을 짚어보자면 90년대 들어 미국에 대한 아니꼬운 감정이 고조되던 가운데 외환위기로 정점을 찍고 그 후 상당기간 지속된 것으로 보임. 08년도 광우병사태 때도 일부 반미주장이 있었지만 촛불시위의 주타겟은 이명박정부의 쇠고기협상에 대한 것에 집중되었고 반미감정에 의한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함. 촛불시위에 가세한 이유는 될 수 있겠지만 주류적인 흐름과는 거리가 있었음. 오바마 집권 이전에 이미 부시2기 들어서 한국의 반미감정이 잦아들게 된 것으로 보임.
  • 비로그인 중도 2013/03/27 10:13 # 삭제 답글

    그런데.... 사실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미국이 더 낫지 않겠어요?
    "당장 서울에서 워싱턴 D.C.보다는 베이징과 도쿄가 훨씬 가까운 곳에 있잖아요."

    p.s. 다만 전 예전에 노정권 때 성조기들고 "국민대회"하던 분들이나 광우병 문제생겼을 때('광우뻥'이라 하시는 분들 계시지만, 확실한 건 모르니 보류...) 미국산 고기 시식회 열며 '맛있네요'연발하던 분들은 이해가 안 감..
  • 파군성 2013/03/27 17:33 # 답글

    속칭 386세대/운동권에 대한 비유로는 저게 적합하겠다 싶은데
    저 글 당시의 20대에선 오히려 그런것보단 효순/미선사건이나 염호 동계올림픽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지금 재보면 많-이 다르게 나올듯.
  • the one 2014/08/18 00:36 # 삭제 답글

    그래도 미국 꼬봉짓은 좀 그만 햇으면 한다
    미국은 항상 잘해주는척 하며 우릴 이용하는거구
    우리 한국 특히 젊은 세대들은 좀 알고 애국햇으면 한다
    적어도 우리 대한민국의 조상들을 생각하며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지
    미국이라고 무조건 좋은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을 찬양해선 안된다
    미국이 가장 악랄한 나라라는 건 확실하다
    미국 일본을 절대 믿지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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