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가상전쟁소설들 side of history

최근의 "월드 인 컨플릭트" 그리고 톰 클랜시류의 소설로 대표되는 가상전쟁물들은 그 역사가 기원전 리비우스의 "로마와 알렉산더 대제의 대결"에 이르기까지 오래되었고,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습니다. 사실 세계적인 강자들의 군사력 대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는 그게 현실이 되지 않는 한 많은 이들에게 흥미진진한 소재니까요.

1차대전 전야였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엽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출판업계의 분위기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각국의 소설가들은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대중들의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소설들을 쏟아냈었죠. 하지만, 국가별로 그리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소설의 내용들도 차이를 보입니다.

먼저 1890년대초의 영국의 가상전쟁소설들에서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동맹이 적으로 등장하는 소설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언론인이자,. 아마추어 외교관이기도 했던 소설가 William Le Queux의 1894년작인 The Great War in England로 대표되는 이런 류의 소설들은 대개 발틱해를 건넌 코삭들과, 채널해협으로 땅굴을 파고 침공한 주아브병사들에 의해 영국 본토가 침공당하는 내용이 전개되죠. 소설속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은 아군이 되어주거나, 중립을 지킵니다. 그리고 결국 영국이 침략자들에 몰려 최후의 최후 순간에 도달했을 때, 인도나 호주, 캐나다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원받아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됩니다. -독특하게도 William Le Queux의 The Great War in England에서는 이 최후순간의 극적인 구원자 역할은 독일이 맡게되죠. 하긴 19세기말 양국간 관계는 결코 나쁘지 않았으니.

<William Le Queux>

반면 프랑스의 가상전쟁소설들은 그 동안 영국에게 빼앗긴 것들에 대한 "복수"가 주내용을 차지합니다. 1887년에 출간되어 꽤나 성공적인 판매량을 기록한Plus d'Angleterre에서는 이집트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해 영국의 모든 식민지를 병합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죠. 

1902년부터 이듬해까지 출간된 당대 프랑스의 가상전쟁소설류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는 Emile Driant대위의 삼부작 연작 소설, La guerre fatale: France-Angleterre도 영국에 대한 복수를 담고 있다는 면에선 유사합니다. 영국을 혐오하는 프랑스인 주인공과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소설은 프랑스군이 영국본토에 상륙해 런던을 점령하자, 영국노동자들이 프랑스군을 환영하며 "워털루 기념비(아마도 웰링턴 기념비를 말하는듯)"를 불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독립하며, 영국은 100조 프랑의 배상금을 물게되고, 채널 해협간의 해저터널을 뚫고  여기에 프랑스군이 배치되는 것으로 끝나죠.

<La guerre fatale: France-Angleterre>

<Emile Driant>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적대국의 침공을 가정한 가상전쟁물의 작가들은 징고이즘에 기대어 그들의 적대국 병사들과 스파이들을 개성없는 평면적인  존재로 묘사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William Le Queux는 그의 소설에서 프랑스의 스파이총책인 Gaston La Touche를 냉혹하고 교활한 악당이라고 묘사했지만, 동시에 "악마도 울고갈 태평한 인물"이자, "강철같은 신경과 근육"으로 근접전에 당할 상대가 없으며, "동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 위트있는 사나이"로도 동시에 묘사됩니다.

Tracy라는 필명의 또다른 작가 역시 소설에서, "프랑스병사들의 훌륭한 정신"을 예찬하죠. -"뭐, 그래도 우리 영국이 더 잘났음ㅋ."으로 이어지지만.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서고 독일해군 확장 정책이 영국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소설 속 악역들도 이젠 프랑스로 독일로 옮겨가게 됩니다. 1903년 Erskine Childer는 The Riddle of the Sands라는 소설에서 독일해군이 안개낀 아침을 틈타 영국에 기습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을 전개했는데, 하필 실제로 1896년 독일해군이 시범적으로 침공계획을 세웠던터라, 영국 해군성은 역정보유출이 아닌가 하고, 수사까지 들어가죠. William Le Queux도 1906년, 데일리 메일에 The Invasion of 1910라는 독일의 영국 침공을 다룬 소설을 연재합니다. Le Queux는 이소설을 쓰면서 영국의 각지역들, 그리고 지역별 민병대를 철저히 고증했고, 당대에 그 어느 소설 보다도 리얼한 가상전쟁소설을 집필하는데, 성공하죠. 최종적으로는 새로 편성된 영국 레지스탕스들에 의해 런던이 해방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독일어를 포함한 27개국어로 번역되어 수백만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독일어판본의 경우, 독일의 패배가 아닌 평화협상으로 엔딩이 편집됩니다.^^;;


그리고 1904년 영국과 프랑스간의 앙땅뜨가 맺어지면서,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프랑스에서도 이젠 영국이 아닌 독일과의 전쟁을 주요가상전쟁의 소재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가장 강경한 Driant대위도 이젠 독일과의 전쟁을 소재로 삼게되죠. 하지만 그는 반영감정을 포기하지 않았죠. 1908년 그는 La guerre fatale에서 "당국의 억압과 앙땅뜨 꼬르디알이라는 장난질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중 사이에서는 반영감정이 만연해있다"고 주장하니까요.

참조:

Robert Tomb, "That Sweet En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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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대공 2012/11/02 17:44 # 답글

    그러니까 빌헬름2세는 병신같이.....
  • Cicero 2012/11/02 20:56 #

    뭐 덕분에 프랑스는 좋았죠.
  • 쿠라사다改 2012/11/02 17:53 # 답글

    뭐랄까, 구라파 판 남벌 같은 겁니까? 역시나 사람들 취향은 시대나 지역차를 넘어서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군요. 어허허.
  • Cicero 2012/11/02 20:57 #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는 어느 시대에나 공통되게 존재하는 물음이죠^^
  • 리리안 2012/11/02 18:06 # 답글

    역시 시대는 달라도 취향은 비슷하군요^^

    그런데 전 영국 버전이 프랑스 버전보다 나은 것 같내요^^;
  • Cicero 2012/11/02 20:57 #

    아,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 2012/11/02 18: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02 20: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11/02 19:16 # 답글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대리체험, 그것도 자신에게는 절대로 벌어져선 안되는 일에대한대리체험은 인기만발이군요.
  • Cicero 2012/11/02 20:59 #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되겠지만 상상만으론 충분히 흥미로우니까요.
  • 셔먼 2012/11/02 20:05 # 답글

    1차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적국 군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사적인 묘사를 취했군요.
  • Cicero 2012/11/02 21:00 #

    음 아무래도 소설적 재미의 추구나 전체이용가를 위한 배려인지도요?
  • M-5 2012/11/02 20:06 # 답글

    백년전의 테크노스릴러군요 ㄷㄷ
  • Cicero 2012/11/06 00:55 #

    톰 클랜시 옹이 원조가 아닙니다.ㅋ
  • K I T V S 2012/11/02 20:17 # 답글

    이야.. 지금은 더 이상 영국 프랑스 독일 3국이 전쟁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안하는데... 2차대전으로 정리되었으니... 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서로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가상역사물이 인기를 끈 것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후에 100년 후, 이 아시아의 지도나 역학구도가 확 바뀔 경우... 한국의 자위용 소설이나 일본의 막장 전기물 그리고 중국 네티즌들의 위대한(...이 아니라 미친) 망상글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얼마나 바뀔지 궁금해지네요;;;
  • Cicero 2012/11/06 00:55 #

    뭐랄까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
  • 시쉐도우 2012/11/02 22:55 # 답글

    그러고 보니 지난 세기 말에 우리나라에서도 가상전쟁물이 유행했........
  • Cicero 2012/11/06 00:54 #

    현 세기에도 꽤나 유행중입니다.^^
    근데 상당히 프랑스소설들에 근접하죠.
  • 지나가던과객 2012/11/02 23:50 # 삭제 답글

    구라파에서 유행하던게 미래에는 아시아에서 유행할 것 같네요.
  • 행인1 2012/11/03 00:00 # 답글

    가상전쟁소설이 20세기 후반의 유행은 절대 아니었군요.
  • RuBisCO 2012/11/03 00:26 # 답글

    물건너 열도에선 대전 터지기 10년 전에 벌써 일본이 어떻게 털릴지 예측한 가상역사소설도 있었더군요. 근데 왜 싸운겨...
  • 검투사 2012/11/03 14:01 #

    높으신 분들은 "그딴 거" 안 읽으니까요. 쇼비니즘에 눈 먼 일반 국민들도 "그딴 거" 안 읽죠.
    하여간 카산드라는 웹툰에서나 인기 있을 뿐이라는...
  • 토나이투 2012/11/03 00:43 # 답글

    이사람들이 참호에서 너무 오래동안 영국요리만 먹다가 드디어 정신줄을...은 아니고 흥미로운 자료군요

    좋은 글 잘읽고갑니다
  • Cicero 2012/11/04 12:58 #

    그냥 전세계적인 오랜 전통이죠. 기원전 로마시대까지 올라가는.
  • 알파캣 2012/11/03 01:43 # 답글

    Plus d'Angleterre 왠지 끌리네요 +_+
  • Cicero 2012/11/04 12:59 #

    전 The Riddle of the Sands가 끌리더군요. 근데 어느쪽이든 원서가 아닌 다음 보기 힘든...
  • 누군가의친구 2012/11/03 03:34 # 답글

    요즘은 게임때문에 그것과 결합되어 더욱 대리만족 시키고 있지요.
  • Cicero 2012/11/04 13:02 #

    게임상에서라도 부르주아지 파쇼들에게 철퇴를!
  • PKKA 2012/11/03 11:53 # 답글

    그래도 톰 클랜시의 <붉은 폭풍>이 현재에도 간간히 회자되는 이유라면 그 사실성과 예언성 때문일 겁니다.
  • Cicero 2012/11/04 13:01 #

    'The Invasion of 1910'의 경우엔 독일제국의 해안도시에 대한 함포사격이나 공습, 그리고 뜻하지 않은 이유에서의 전쟁발발같은 요인에서 꽤나 사실성과 예언성을 담고 있다고 평해지더군요. 그런면에서 톰 클랜시는 오늘날의 William Le Queux라고 부를만 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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