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나치들이 팔레스타인테러리스트를 도왔다는 기록이 공개되다 side of history





40년전, 이스라엘 선수들과 코치에게 자행된 학살이 뮌헨올림픽에 그늘을 드리웠다. 증명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좌익 테러리스트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작전을 뒤에서 도왔다고 의심되어왔다. 그러나 슈피겔을 통해 공개된 파일에 따르면, 좌익 대신 네오 나치가 개입했고, 당국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72년 10월 27일, 전직 무장친위대 대원인 카를 요하임(Charles Jochheim)은 전선에 나서는 병사처럼 무장한 체 뮌헨의 집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은 어느 옷가방에서 3정의 카라쉬니코프 자동소총, 6개의 탄창, 174발의 탄약과 2정의 권총, 리볼버 1정과 6개의 벨기에제 수류탄을 발견했다.

또한 다른 두명의 남자도 무기를 운반하다가 체포되었다. 뮌헨경찰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볼프강 아브라모프스키(Wolfgang Abramowski)는 자신의 허리벨트에 무기를 숨기고 있었고, 빌리 폴(Willi Pohl)은 2정의 권총과 수류탄 1개를 지니고 있었다.

폴과 아브라모프스키가 경찰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우익 극단주의자 분파인 “대독일을 위한 민족사회주의자 투쟁단(National Socialist Fighting Group for a Greater Germany)의 소속이었다. 두 사람은 이 무기들을 사용해 감옥에 갇힌 다른 극단주의자들을 탈옥시킬 계획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곧 이들의 진술의 진위여부를 의심했다.

아브라모프스키와 폴이 지니고 있던 문서 중에서는 독일 전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범죄를 담당한 판사에게 보내는 협박 편지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뮌헨 올림픽 학살 사건 이었다.

<72년 사건 당시, 인질범들과 협상에 나서던 뮌헨경찰청장>

1972년 9월 5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테러리스트조직인 “검은 9월단”은 9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수백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독일경찰은 퓌르스텐펠트브룩(Fürstenfeldbruck)군사공항에서 이스라엘인들에 헬기에 잡혀있는 동안 구출하려 했지만, 테러리스트는 모든 인질을 학살해버렸다. 한명의 경찰도 총격전의 와중에 사망했다. 3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아남아 체포되었고, 폴과 아브라모프스키의 짐에서 발견된 편지에 적힌 주소는 이들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의 주소였다.

편지에서 검은 9월단은 판사에게 “만약 올림픽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수사에 계속 이스라엘정보국이 참가하게 한다면”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아브라모프스키와 폴로부터 압류한 무기들에 대한 조사는 이것이 단순히 우익 극단주의자 모방범들에 의한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사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

1973년 7월 23일, 뮌헨 경찰의 최종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폴과 그 일당들의 범죄와 뮌헨의 올림픽촌에서 발생한 습격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추가적인 증거는...압류된 자동소총과 수류탄이 테러범들이 사용하던것과 동일한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증거들은 독일의 네오나치인 폴과 아브라모프스키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와 협력했다는 의혹이 전적으로 사실임을 증명했다.

경찰 보고서는 전체 2천페이지에 달하는 쾰른에 위치한 국내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의 문서의 일부로서 최근 슈피겔의 요청에 따라 공개되었다. 문서에는 기밀로 분류되었던 분석과 메모, 대외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undesnachrichtendienst: BND) 및 연방범죄수사국(Bundeskriminalamt)과의 협력, 그리고 경찰보고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밀 해제된 자료를 바탕으로 올림픽습격사건의 이야기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예를 들면 현재까지는 많은 전문가들이 검은9월단과 관계를 가져오던 좌익극단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들이 뮌헨에서 머물 장소를 찾아주었다고 가정해왔다. 또한 학살을 “제국주의자들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찬탄한 적군파(RAF)의 설립자 울리케 마인호프의 팜플렛처럼 양측 집단사이의 협력을 암시하는 증거들이 존재해왔다. 또한 1978년 테러리스트 조직의 이탈자가 슈피겔에게 언급한 바에 따르면 그는 다른 RAF 단원으로부터 “혁명조직”이 팔레스타인 민병대가 머물 장소를 찾는 동안 “이일에 가담했다”고 말했던 것을 들은 적 있다고 했다. 
 
<극좌 테러조직인 적군파는 오랫동안 검은9월단 테러의 협력자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그런 언급들은 전설로 치부해야 한다.

검은 9월단은 독일에서 보급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인질사태가 벌어지기 몇주전 몇 명이 먼저 독일에 도착했고, 그들은 다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올림픽으로 인해 모든 것이 서류화되어 쉽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뮌헨에서 거처를 마련했다. 본래 계획대로 함께 머물지 않고, 각자 다른 호텔에 방을 잡았다.

“토니”라 불리던 지도자중 한사람은 심지어 슈드도이체 자이퉁(Süddeutsche Zeitung)지에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찾는다”는 광고를 게재했다. 변호사의 전 아내였던 Herta N.는 의심하지않고 토니에서 방을 빌려주었다.


좌익 극단주의자를 대체한 네오 나치

1973년초, 헌법수호청의 정보요원이 연방정보국의 동료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그는 좌익 극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독일의 네오나치인 아브라모프스키와 폴의 사건을 의마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살이 있기 두 달여 전, 서부 도시인 도르트문트(Dortmund)의 경찰은 정보기관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텔렉스로 헌법수호청에 보냈다. 제목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음모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텔렉스는 빌 폴과 무하마드 다우드(Mohammed Daoud)라는 가명을 사용한 뮌헨테러의 지휘자, 아부 다우드(Abu Daoud)의 관계에 대해서 지적했다.

<뮌헨테러의 실질적인 지휘자,  아부 다우드(Abu Daoud)>

만약 헌법수호청이나 뒤셀도르프나 뮌헨의 경찰이나 범죄수사기관, 연방범죄수사국이 텔렉스의 중요성에 대해서 적절히 대처했다면 학살을 막을수 있었을까?

오늘날 빌리 폴은 다양한 필명으로 성공한 범죄소설가이다. 그는 수십년전 테러와 폭력을 포기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주제로 소설도 집필했다. 폴은 북독일에서 유명한 크라임쇼인 “Tatort”의 에피소드 대본도 집필한다. 그는 사진이 실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슈피겔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1972년 여름 당시 빌리 폴은 소련의 영토가 되는 동 프로이센 지역에서 출생한 28세의 억센 금발의 청년으로 다량의 절도전과 보유자였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고용주의 돈까지 훔쳤는데, 이로인해 고용주가 그가 PLO의 과격파들을 지지하며, 도르트문트에 있는 뢰미셔 카이저(Römischer Kaiser)호텔에 묵고 있는 아랍인처럼 보이는 인물과 만나고 다닌다고 경찰에 신고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재빨리 호텔에 묵고 있는 인물이 사드 왈리(Saad Walli)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드 왈리는 아부 다우드의 가명이었다.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연방범죄수사국이나, 헌법수호청 그 어느 쪽도 도르트문트 경찰로부터 사드 왈리의 수상한 점을 찾았다는 보고를 받은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결과, 문서에 따르면 아부 다우드, 일명 사드 왈리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사건 이전과 진행 도중에 뮌헨의 볼프(Wolff)호텔에서 호텔에 묵고 잇는 그의 민병대를 만날 수 있었고, 리비아와 튀니지에 있는 그의 협력자들을 호출할 수 있었다.


모르고 개입했다?

폴과 아부 다우드간의 접촉은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네오 나치들에 의해 마련되었다. 보이쉬한 얼굴에 옅은 수염을 기른 예루살렘에서 온 35세의 교사인 아부 다우드는 푸른 눈의 폴이 지니던 정치적 관점에 무관심했고, 폴과 같은 이들이 “우리의 미래에 매우 유용”하다고 여겼다.

도르트문트에서 다우드는 몇 대의 메르세데스 세단을 사는데 폴의 도움이 필요했고, 폴은 다우드를 도왔다. 다우드는 또 전문여권위조자가 필요했고, 폴은 또다시 감옥에서 출소한 친구인 아브라모프스키를 소개해주었다. 마찬가지로 동 프로이센 출신인 28세의 독일인은 전문가로 여겨졌다.

오늘날 폴은 자신이 올림픽 습격에 모르고 개입했다는 것을 거의 확실하게 단언한다. “나는 아부 다우드를 태우고 독일 절반을 돌았는데, 그는 다양한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쾰른에서는 양복과 넥타이를 걸친 PLO관리를 만났다. 폴은 그들이 본에 있는 리비아 대사관 소속의 외교관들이라고 믿었다. 폴에 따르면, 그와 아브라모프스키는 7월말, 독일을 떠나 로마를 거쳐 레바논을 여행했다.

나중에 아브라모프스키가 연방범죄수사국의 국가안보팀에게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와 폴은 베이루트 인근의 마을에 위치한 지붕이 평평한 방갈로로 향했다. 아브라모프스키에 따르면 매일 저녁 마다 PLO관리들은 그를 데리고 수도에 위치한 인쇄소로 데려갔고, 그는 그곳에서 쿠웨이트와 레바논 여권을 위조해 이름을 미국과 프랑스 서류에 나오는 이름으로 바꾸고, 사진을 교체했다. 뮌헨의 습격자들이 아브라모프스키의 작업실에서 위조한 여권으로 독일에 들어왔는지는 불확실하다.

폴에 따르면 그때까지도 뮌헨습격의 계획에 대해 아는바가 없었다고 한다. 학살이 있기 12일 전인 8월 24일에야 팔레스타인인들은 “극적인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해 보다 자세히 털어놓았다.

폴은 “뮌헨”이란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20명의 이스라엘인들을 감옥에 갇힌 200여명의 팔레스타인 민병대와 교환할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유혈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두 독일인들에게 독일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지 물었다.


미친 계획

폴은 빈에서 열리는 국제언론컨퍼런스를 제기하면서 팔레스타인당국과 함께 하겠다고 제안했다. 아브라모스키의 연방범죄수사국에서의 증언에서 확인된것처럼, 폴은 파리를 거쳐 빈으로 날아가, 올림픽 기간중 오스트리아에 머물면서 “그곳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여러모로 도왔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인질극이 실패한 것을 보자, 오스트리아를 떠났다. 며칠 뒤, 그는 PLO의 정보총책인 아부 이야드(Abu Iyad)가 복수를 결심하고 있는 중동으로 돌아왔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이야드는 뮌헨작전이 그렇게 재앙으로 끝난것에 대해 그 누구도보다도 독일 당국을 비난했다. 반면에 그는 이스라엘 관리들이 구출작전을 실패로 이끌었다는 루머를 믿었다.

PLO의 정보총책의 입장에서, 이것은 독일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 개입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따라 독일을 적으로 대해야 했다. 이야드는 폴에게 장래에 독일을 타겟으로 하는 공격계획을 제안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폴은 카이로에서 이제 자신이 미친 계획이라고 부르는 계획을 제안했다.

그는 독일 몇 곳의 시청을 장악하고 지역정치인들을 인질로 잡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197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쾰른 대성당을 습격해 독일 및 다른 국가들에게 요구사항을 강요한다. 작전은 “모스크”라는 코드명이 붙여졌다.

10월 중순, 아브라모프스키와 폴은 이 작전과 다른 작전을 위해 마드리드로 가서 무기를 받았다. 그들은 무기와 함께 파리를 거쳐 뮌헨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이것은 공개된 문서와 일치는 폴의 이야기다.


믿기 힘든 관대함

그러나 그들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전에, 배신당하고 체포되었다. 두 네오 나치에게서 발견된 수류탄은 수사관들로 하여금 올림픽학살의 지휘자와 연관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게끔 유도해냈다. 한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수류탄들은 “매우 독특한 제조공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웨덴제 폭약을 넣은 벨기에제 수류탄은 오직 사우디 아라비아를 위해서만 생산된다. PLO테러리스트들은 실패한 인질구출작전에서 자신들의 인질을 죽이는데 정확히 똑같은 수류탄을 사용했다.

<뮌헨사건 당시 인질들을 실은채 수류탄에 파괴된 헬기>

물론 이 사실은 유사한 극우조직 네트워크가 마드리드에서 파리를 거쳐 바이에른에 이르는 정확히 똑같은 루트를 통해 뮌헨의 습격자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질문은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폴은 그런 경우에 대해서 부정한다. 그는 마드리드를 통하는 루트는 자기 아이디어였고, 올림픽 직후에만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신에 그는 리비아의 외교관들이 뮌헨의 테러리스트들을 위해 칼라쉬니코프 소총과 수류탄들을 이나라에 반입하는 것을 도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독일법정은 폴과 아브라모프스키를 믿기 힘들정도로 관대하게 대했다. 수사는 군용무기통제법 위반 혐의에 맞춰졌으며, “범죄조직 가입”이나, “납치계획수립”, “에센, 보훔, 쾰른에서의 불특정 인사에 대한 납치기도”는 제기되지 않았다.

1974년 두 독일인은 불법 화기 소유에 대해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브라모프스키는 8개월, 폴은 26개월의 징역을 각각 언도받았다. 형을 언도받고 나서 4일뒤, 폴은 풀려나 베이루트로 떠났다. 자료에는 왜 이런 관대한 처분을 받았는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어쩌면 당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아남은 3명의 올림픽습격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썻던 방법-독일 항공기납치라는-을 다시 폴을 석방시키기 위해 사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폴의 체포이후 며칠 후, PLO의 파타(Fatah)일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했다. 독일 정부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테러조직의 생존자 3명은 리비아로 떠났다.

<1972년 납치된 루프트한자 여객기. 당시 인질중에는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조셉 케네디도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기사를 번역하면서 한편의 톰 클랜시 소설의 축약판을 읽는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만, 아마 많은 분들이 거장 데츠카 오사무의 이작품을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싶군요.

"아돌프에게 고한다"




덧글

  • 시쉐도우 2012/08/30 22:52 # 답글

    헐..네오나치가 배후였다니! 놀랍네요.
  • Cicero 2012/08/31 01:01 #

    저도 알고나서 충격이었습니다.
  • 세피아 2012/08/30 23:20 # 답글

    으아니!!! 배후가 네오 나치라고요???

    아직까지 그들을 다 척살하지 못한 것인가!!!!!!!
  • Cicero 2012/08/31 01:01 #

    최근까지도 눈에 띄는게 네오 나치인데요.뭘.
  • 누군가의친구 2012/08/30 23:25 # 답글

    어? 이거 의외로 충공깽이네요. 적군파가 아니라 네오 나치라니!....
  • Cicero 2012/08/31 01:02 #

    이로서 적군파는 억울한 혐의를 하나 벗게...
    라곤 해도 원래 막장.
  • KITUS 2012/08/31 00:00 # 답글

    가스실과 백린연막탄... 아, 끝없는 갈등이여...
  • Cicero 2012/08/31 01:02 #

    증오의 연쇄죠.
  • 골든 리트리버 2012/08/31 00:06 # 답글

    어쩌면 사우디도 개입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될 수도 있겠군요.
  • Cicero 2012/08/31 01:03 #

    사우디 군부내 바스주의자같은 아랍민족주의자들의 협력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죠.
  • 로리 2012/08/31 00:12 # 답글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 오땅 2012/08/31 00:26 # 답글

    이러니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세력이 서방의 지지를 못 얻죠. -_-;
  • Cicero 2012/08/31 01:06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의가 될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냉전시기면 모를까 적어도 오슬로 합의 이후로는 PLO가 그렇게 서방에게 외면 받지도 않지 않나요?
  • 플러터샤이 2012/08/31 00:39 # 답글

    ..어? 배후가 네오 나치라고요?
  • Cicero 2012/08/31 01:07 #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고 하네요.
  • Luthien 2012/08/31 01:33 # 답글

    http://whitebase.or.kr/bbs/board.php?bo_table=WB 에 출처 명기하고 옮겨도 될까요?
  • Cicero 2012/08/31 10:00 #

    예, 출처만 표기해주신다면야.
  • 셰이크 2012/08/31 02:20 # 답글

    적의 적은 내 친구
  • Cicero 2012/08/31 10:00 #

    가장 오래된 전략이죠
  • 행인1 2012/08/31 08:53 # 답글

    (구하기 힘들)사우디왕국 전용 무기에 네오나치까지 끼어있으니 정말 톰 클랜시 소설이 따로없군요. 그나저나 두 사람은 무엇때문에 며칠만에 풀려났는지...(혹시 거래?)
  • Cicero 2012/08/31 10:01 #

    슈피겔은 보복테러에대한 우려때문이라고 지적하더군요.
  • .......... 2012/08/31 09:37 # 삭제 답글

    극과 극은 통한다는게 이런경우군요. 뭐...모사드도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랑 딜을 한적이 있으니
  • Cicero 2012/08/31 10:02 #

    언제나 현실은 픽션보다 드라마틱합니다.
  • 허안 2012/08/31 10:28 # 답글

    네오 나찌들을 가스실로! (생각하는 거라곤)
  • Cicero 2012/08/31 16:32 #

    헐ㅋ 그건 좀 위험.
  • 萬古獨龍 2012/08/31 10:53 # 답글

    이건 충공깽이네요
  • Cicero 2012/08/31 16:32 #

    사실상 그동안의 상식을 뒤엎어 놓았으니 말이죠.
  • 역성혁명 2012/09/01 20:25 # 답글

    영화 뭰헨에서 그 테러주동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어작내는 과정을 그려내고있는데, 아주 명작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만들면 끔찍할 부비트랩과 폭탄으로 어작냈으니. 증오는 어마어마한 힘을 줍니다.
  • Nero 2012/09/02 02:26 # 삭제 답글

    출처를 명기하고 퍼가도 될까요?
  • Cicero 2012/09/02 09:44 #

    출처표기하고 어디로 퍼가는지 알려주시면 괜찮습니다.
  • dfgh 2012/09/06 21:06 # 삭제 답글

    잘난척 말고

    너님도 네오나치처럼 될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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