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민종교론 연구들 시민종교· 정치종교론

1967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하나의 국가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어느 공통된 가치관, 그리고 그 상징과 표상을 신성시하는 것을 통해 그 통합이 유지된다는 시민종교의 개념을 정립해 소개한바 있었습니다. 벨라의 첫소개 이래 30년 넘는 시민종교연구의 역사과정에서 "시민종교가 '민족주의의 종교화'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단순히 미국 내지는 앵글로 국가들만의 특징 아니냐?" "통합을 유지하는 모든 정치적인 것의 신성화는 시민종교인가?"라는 다양한 논제와 비판들이 제기되었고, 이를 들러싼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며 오늘날 하나의 정치-사회-종교학적 개념으로 나름의 자리를 잡았죠.-3번째 질문같은 경우에는 모든 사회통합적 정치의 신성화가 시민종교로 해석되어, 나치즘에 대해서 "얼마간 독일의 시민종교였"다는 설명이 70년대 논문에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ㅎㄷㄷ... 나중가서야 그 유명한 에밀리오 젠틸레에의해 정치종교와 시민종교의 분리가 이루어지죠. 오늘날의 시민종교론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논쟁에 대해서는 자료를 보강해가면서 추후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민종교론, 특히나 벨라가 모든 사회는 어지간하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시민종교론을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하는 연구는 없었을까요? 아쉽게도 1967년에 등장한 시민종교의 개념은 얼마동안 한국에서 미국적사례의 연구하는 방향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민종교론의 한국적 적용은 2000년, 한일장신대의 차성환교수가 "새 천년과 한국 시민종교의 과제(이하 새천년)"라는 논문에서 최초로 제기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새 천년'이 한국의 시민종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념비적인 연구결과물은 아니었습니다. 저자인 차성환교수는 한국의 시민종교의 원형을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으로 지목하면서, 이것이 오늘날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을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차성환 교수는 한국의 시민종교라고 할수 있는 가치관이 유교에서 파생된 어떤 덕목이 아니라, '연고주의'라고 주장하고 나선것인데, 이것은 앞서 언급한 벨라의 시민종교에 대한 개념과는 애당초 부합될수가 없었죠. 연고주의는 보다 폭넓은 사회현상이나, 사회문제를 설명할때 적합할지 몰라도, 협소한 '정치의 신성화와 그를 통한 통합'을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한 개념이었습니다.

이어서 발표된 논문이 2004년, 고려대 김응기(Andrew Eungi Kim)교수가 계명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한국학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NATION-BUILDING AND KOREAN CIVIL RELIGION: THE MAKING OF NATIONAL COMMUNITY, CULTURE, AND IDENTITY(이하 NATION-BUILDING)입니다.
이 논문에서 김응기 교수는 현재 한국의 시민종교가 산업화와 국가발전의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바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결과, 한국의 이시기 한국의 시민종교는 강력한 반일주의와 하나의 공동체 의식이 강조된 민족주의, 국가지도자를 가부장으로 보는 가부장제 가족주의적인 국가관과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이같은 성격은 "기나긴 역사와 공통의 역사적 경험", "혈통과 언어적 동질성", "국가적 상징", "샤머니즘과 문화적 통일성", "유교적가치"와 같은 구성요소들에 의해서 강화되고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 김응기교수의 논문은 차승환 교수의 '새 천년'에 비해 시민종교에 대한 인식과 성격규정이 한국상황에의 적용이 매우 적실성있는 논문이었습니다. 
다만 지적되어야 할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았죠. 우선적으로 박정희 정권 이전에 419를 통해서 표출되었고, 이후 전태일열사의 분신, 부마항쟁등으로 이어진, 민중·민주적 가치관에 대한 신성화가 가부장제 가족주의 국가관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불충분했습니다. 김응기 교수는 박정희의 산업화 시대에 노동계의 투쟁이 적었다는 사실을 들어, 박정희 정권의 시민종교에 포섭 내지는 동의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시기 분명하게 저항의 흐름이 있었음은 부정할순 없죠. 
또한 두번째로 던질수 있는 질문은 앞서 질문에 연관지어, "87년 이후에도 이 산업화시대에 만들어진 시민종교 가치관이 유지되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김응기교수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자발적으로 진행된 '금모으기운동'을 아직까지 강한 가족주의적 민족주의가 남아 있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97년이 아닌, 오늘날 국가지도자에게 가부장적 권위를 인정하는 인식이나 민족자체를 가족과 같은 운명공동체로 바라보는 인식이 이전에 비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의문이군요.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발표된 한국 시민종교에 대한 연구로는 2009년 발표된 숭실대학교 이철 교수의 '현대 사회에서의 시민종교의 역할에 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중심으로'(이하 현대 사회)가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이철 교수는 기존의 시민종교의 사회통합 역할 메커니즘-갈등의 방지, 사회통합의 유지-에 대한 인식을 비판하면서 시민종교의 목표는 궁극적으로는 통합에 이를수 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갈등의 방지가 수단인것은 아님을 지적하죠. 즉, 시민종교적인 가치관에 대한 위반이 발생시, 시민사회는 이를 '악',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갈등을 유발하고 진행, 궁극적으로 이 '부정'을 축출한 뒤, 정화된 사회로의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시민종교에 대한 신기능주의적 해석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철 교수는 그 사례로서 워터게이트사건을 정치의 기본도덕에 대한 위반으로 받아들이고 공화당-민주당 구분없이 닉슨의 하야를 촉구한 미국의 사례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위반으로 받아들이고 진보-보수 관계없이 참가했던 한국의 촛불시위를 제시하죠.
이철교수의  논문은 현대적 상황에 맞는 사례와 함께, 이론적으로는 신기능주의이론을 통해, 한국의 시민종교에 대해 접근해 보았다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받을만합니다. 특히나, 시민종교론-특히 그것의 한국적 적용-자체가 아직까지 불모지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하지만 사례적으로 저자인 이철 교수 스스로가 지적했듯이 내걸은 투쟁구호가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응집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갈등의 극복과 통합보다는 정파들의 반동화를 자극해 현상황에서는 갈등을 더욱 강화시킨체 평가가 정립되지 않은 촛불시위를 워터게이트사건과 비교하면서 시민종교의 갈등극복의 기능을 이야기하기엔 다소 무리가 아니었나 합니다. 시민종교가 아닌 단순히 "정치의 신성화", "정치의 서사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보다 적실성있지 않았나 싶군요.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한국의 시민종교론에 대한 연구는 이 세가지가 전부 입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세가지 논문모두, 한국의 시민종교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과 해석, 그리고 시대적 적용을 가지고 있기에 나름 이분야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는 좋은 선례를 남겨준다고 볼수있겠습니다. -차성환교수의 논문은 접근자체의 미스가 눈에 띄지만 말이죠.

덧글

  • 대공 2011/07/18 20:05 # 답글

    추천 감사합ㄴ디ㅏ
  • Cicero 2011/07/18 21:13 #

    김응기교수 논문은 특히 추천드립니다. 영문이라 좀 읽기 불편하지만요.
  • 대공 2011/07/19 12:47 #

    한 14페이지까지 읽다가 점프해서 결론으로 바로 갔지요. 영문 싫어요 ㅠㅠ
    요약을 잘해주셔서 제가 덧붙일말은 없는것 같네요
  • 만슈타인 2011/07/18 21:13 # 답글

    한국의 시민부터 찾아봅시다 응?!!?!
  • Cicero 2011/07/18 22:49 #

    시민들은 대부분이 다중으로 은폐상태에 있습니다.[각성조건]을 맞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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