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이 왜 돼지고기와 술을 금기시하냐는 질문에 대해 그들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마호메트가 술에취해 돼지에게 밟혀 죽었기 때문이었다는거다...마호메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중에는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지 못하자, 화를 참지못하고 중동으로간 추기경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서구의 중세시대, 십자군전쟁이라는 그 유례를 찾기힘든 거대한 종교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 양 종교집단간에 끊임없는 적의와 증오를 분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상대 종교에 대한 적의와 증오는 곧 상대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왜곡의 기록들은 당시의 문학작품들속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12세기의 유명한 영웅서사시인 롤랑의 노래에서는 이슬람교가 테르바간, 마호메트, 아폴론을 섬기는 다신교로 묘사되었으며, 이후에 나온 비슷한 영웅서사시들에선 최대 30여개의 신을 숭배하는 종교로 묘사되었다.
1101년 십자군 원정에 참가해 포로가 되었던 잘츠부르크의 티에모주교의 연대기도 대표적인 기독교인들의 왜곡된 이슬람 이미지를 반영하는 작품이었다. 연대기속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십자군 원정을 따라나섰던 잘츠부르크의 티에모주교는 사라센인들에게 포로가되어, 궁정의 금세공 기술자가 된다. 티에모주교의 솜씨는 매우 뛰어났고, 이에 사라센군주는 그에게 황금우상의 손질을 맡긴다. 하지만 티에모주교는 오히려 황금우상을 파괴하고, 사라센군주에게 하나뿐인 하나님의 진리를 설파하다가 처형당한다. 그의 순교를 보고 악마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한탄한다.
이슬람교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는 사람이라도 터무니 없게 들릴 왜곡된 이야기지만,- 티에모의 경우, 그가 포로가 되었다가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모두 구라였다.-사실상 이슬람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없는 서구 프랑크인들에게는 이교도들에 대한 증오를 고취시킬수 있는 훌륭한 프로파간다였다.
왜곡된 이미지에 기반한 프랑크인들의 적개심은 마찬가지로, 무슬림들의 프랑크인들에 대한 적의로 이어졌다. 십자군전쟁기간동안 수많은 무슬림들은 지하드를 주장하고, 찬미했다. 그결과-비록 십자군전쟁이 사실상 종언을 고한 시기이긴 하지만-1300년대 시리아의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Ibn Taymiyyah)는 무슬림세계에서 기독교, 유대교등 모든 이교도들의 완벽한 배제라는 과격한 지하디즘을 주창하기도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이교도들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는 무슬림들 역시 마찬가지로 척결해야될 대상으로 보았다.-학자들은 오늘날의 일부 과격한 지하디즘의 뿌리를 이븐 타이미야를 지목한다.

하지만 이 과격한 상대종교에 대한 적의만이 가득하던 이 시기, 서로에 대한 증오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아름 다운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1253년 프랑스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루브룩(William of Rubruck)은 사라센인들 너머에 있는 몽골인들에게 알게되고 그들을 선교할 목적으로-혹은 그들이 전설상의 프레스터 존인지 확인하거나, 사라센들에 대항한 군사동맹을 맺을 목적으로-몽골제국의 수도를 방문한적이 있었다.

당시 칸의 궁정에는 그를 제외하고도 네스토리우스교와 이슬람교, 불교(마니교)성직자들이 함께 머물고 있었고, 여기에 흥미를 느낀 칸은 이들을 한데모아놓고 기독교와, 이슬람, 불교중에 누가 진정한 진리인지 토론해 볼것을 명령했다.

루브룩은 몽골 궁정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들과 한팀을 꾸렸다. 이들은 루브룩은 네스토리우스 성직자에게 누구를 먼저 논박할것이냐고 물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먼저 이슬람을 논박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루브룩은 이를 거부했다.
"그건 별로 좋은 계획이 아니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일신개념에 대해서는 동의할거요. 그러니 우상숭배의 문제로 불교를 먼저 공격합시다."
루브룩의 제안에 네스토리우스 성직자들은 동의했다.

그리고 오순절 전날인 5월 30일, 칸의 궁정에 루브룩을 포함한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의 성직자들과 이들을 보기위한 수천명의 방청객들이 모여들었다. 칸이 선정한 세종교 신자출신의 심판관들의 토론도중, 토론을 방해하거나 야유를 보내는 방청객은 죽음으로서 대가를 치룰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토론이 시작되었다. 먼저 불교의 사제가 나와 루브룩과 설전을 벌였다.

"형제여. 만약 입을 다물어야 할것 같다면-하다가 대답을 못할것 같다면-자네보다 영리한 사제를 지목하게."
루브룩이 대답하지 않자, 사제는 말을 이었다.
"그럼 무엇부터 얘기해보겠나? 천지창조? 아니면 사후세계?"
불교사제의 질문에 루브룩이 답했다.
"형제여. 그 모든것은 우리 토론의 시작이 될수없소.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시작되고, 또 우리의 다름이 신에서 부터 시작디며, 칸께서도 그걸 제일먼저 듣고 하실거요. 그러니 신에 대해서 먼저 토론합시다."
그러나 불교사제는 그제의가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사제는 마니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구분하는 두개의 원소인 선과 악, 윤회를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네스토리우스교사제가 루브룩에게 말했다.
"저자는 윤회의 논리로 빠져나갈 기회를 찾고 있소. 그렇게 놔둬선 안됩니다."
루브룩은 고개를 끄덕이곤 불교사제에게 말했다.
"우리는 유일신을 믿소. 스스로 존재하고 모든것을 창조하신분을 말입니다. 당신들을 무엇을 믿습니까?"
불교사제가 대답했다.
"지혜로운 자는 여러 신들이 있음을 말하지만,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유일신을 말하지. 생각해보라. 그대의 나라에도 위대한 왕이 있겠지. 그러나 그러나 그가 여기 계신 칸만큼이나 위대한가? 그와 같이 종교마다 다른 신들이 있는것이다."
루브룩이 대답했다.
"당신은 어리석은 예를 들었소. 어떻게 신과 인간이 뵤가 될수있습니까? 그런식으로 치면 모든 나라의 위인들이 스스로 신이라 칭할것이요."
불교사제가 루브룩의 말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 신 말이다."
루브룩이 답했다.
"우리의 신은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분이요. 그는 초월적인 선이며, 모든것을 관장하시지요."
사제가 답했다.
"그렇지 않소. 저 하늘 너머에는 위대한 신이 계시고 그 밑에는 다른 여러 신들이 게시지. 그리고 그 신들 밑에는 더 낮은 여러 신들이 계시고, 그런식으로 셀수 없는 많은 신들이 이세상에 계시다오."
사제는 이어서 말했다.
" 만약 당신의 신이 당신 말대로 전능하다면 왜 그분은 악을 창조했겠소?"
"그건 당신이 잘못 알고 있소. 신은 악을 만들지 않았지요. 이세상 모든 것은 선입니다."
불교사제들은 루브룩의 답변에 놀라 웅성거렸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거요?"
"당신은 질문자체가 그릇되었소. 우선 '악'이 무엇인지 규정지어야만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말할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의 첫번째 의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세상에 전능한 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선 당신이 답해야만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것들을 내가 답해줄수있을것이요."
그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칸의 심판관이 말했다.
"칸께서는 어서 대답하라 하신다."
신 다음으로 이 세상 인간중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자의 명령에 사제는 대답을 피할수 없었다.
"이 세상에 전능한 신은 없소."
그러자 사라센인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라센인들이 한참을 웃고나서야 궁정은 정적을 되찾았고, 루브룩은 사제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신은 이세상 모든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구해줄수없음이 틀림없구려. 전능하지 않다면 어떤 상황에서는 그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할테니까. 게다가 어떤 이도 두 주인을 섬길순 없지요. 어떻게 당신은 이세상 천지간에 수많은 신들을 동시에 섬길수 있겠습니까?"
사제는 침묵을 지켰고, 루브룩은 이어 성삼위일체와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려했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사제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발언권을 넘겨주시오. 사라센 새끼들 좀 까게!"
루브룩은 네스토리우스사제에게 발언권을 넘겼고, 네스토리우스는 사라센인들과 설전을 벌이기위해 단상에 섰지만, 사라센인들은 그의 도전을 교묘하게 피했다. 그의 질문에 사라센인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가 진리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복음서의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믿지요. 때문에 당신들과 설전을 벌일 이유는 없을것 같군요."
라고 답했다.
네스토리우스사제들은 이어 기독교교리에 대해 기나긴 연설을 벌였다. 사라센인들은 굳이 나서서 네스토리우스사제들을 반박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이제 기독교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없었다.
토론이 끝난후 연회장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사제들은 비교적 화복한 분위기속에 함께 지냈지만, 불교신자들은 침묵만을 지켰다.

이 종교토론이 있고 나서 얼마뒤, 루브룩은 칸이 루이9세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유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떠나기전 그는 칸과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자리에서 칸은 루브룩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몽골인들은 오직 한분의 신을 믿는다오. 우리의 삶과 죽음 부활을 관장하시는 그분을 말이오...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여러개의 서로 다른 손가락을 주셨듯히 인간에게 여러개의 길을 주셨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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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교와 불교는 같은 종교로 보기엔 꽤 무리가 있습니다만, 원문에서 불교로 계속 병기하기에 저도 그에 따라 표기했습니다. 이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덧글
행인1 2009/10/31 19:39 # 답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로군요....;;;
Cicero 2009/10/31 20:04 #
오랜진리입죠.
하이버니안 2009/10/31 21:31 # 삭제 답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들과 한팀을 꾸렸다는 것 자체가 비범하게 놀라운 현지화 전략이군요.그 시절 서유럽 본토에선 열심히 불에 굽고 있었을 텐데;;
Esperos 2009/10/31 22:45 #
막상 그 무렵 서유럽 본토에서는 별로 불에 굽지 않고 있었지요. 진짜 열심히 불에 굽던 때는 르네상스 시대, 즉 개신교가 일어난 이후이며... 개신교와 천주교가 서로 자리다툼을 하던 독일 등에서 특히 심했습니다. 반대로 이탈리아에서는 한 사건을 두고 수십 년을 재판을 할 정도였죠.
Cicero 2009/10/31 23:35 #
애당초 서유럽인들이 그렇게 찾아해매던 프레스터 존자체가 네스토리우스교였으니까요. 공동의 적앞에서는 놀라운 협동을 보일수밖에요.
Esperos 2009/10/31 22:46 # 답글
불교와 마니교는 조낸 많이 다르지요. 아마 당대 서유럽인들이 마니교든 불교든 어느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요.
Cicero 2009/10/31 23:33 #
아마 그당시 유일한 판단 기준은 유일신교냐 아니냐 였을겁니다.
LVP 2009/10/31 22:53 # 답글
그러고보니, 알비주이파 이단사건의 이교도들도 실제로는 마니교에 가깝더라는 후문이 있드라..
Cicero 2009/11/01 11:50 #
이단이란게 워낙 다양하니...
윙후사르 2009/11/01 00:18 # 삭제 답글
네스트리우스랑 동맹한 것도 그렇지만... 사라센 친구들과 화목했다는건 의외군요. 근데 당시 카톨릭측이 불교의 존재나 교리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나요?
Cicero 2009/11/01 10:10 #
의외로 중세수도사들이 무심했을거라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거라 생각됩니다. 다만 그들 취향에 맞게 상당히 변색된 정보였을 확률이 높죠.
레비아탄 2009/11/01 00:36 # 삭제 답글
우리 심오하신 불교께서 저리 까였다니 ;ㅁ;
Cicero 2009/11/01 10:08 #
정확히는 마니교죠.
들꽃향기 2009/11/01 01:32 # 답글
적절한 짤방과 적절한 서술 잘 읽고 갑니다. ㄲㄱ하지만 결국 뭉케가 택한건 불교..ㄷㄷ
Cicero 2009/11/01 10:12 #
원문에는 몽케가 설전 끝나고 술자리에서 루브룩에게"너님, 내 보좌관이 내가 마니교라고 전달한거 듣고도 그런거임?"
"ㄴㄴ 몰랐음. 보좌관의 오역했음."
"안잡아먹을 거임. 님아 겁내지 마셈."
이런 대화를 주고 받은 부분도 있더군요.
Empiric 2009/11/01 03:56 # 삭제 답글
본격 '천년 전 키배.txt'
Cicero 2009/11/01 10:12 #
진짜 제목 그걸로 할껄 그랬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