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이후, 그조직이 변형되거나 사멸한 튜튼기사단이나, 성전기사단과는 달리, 성 요한기사단은 몰타를 기점으로 지중해교역을 통해서 번성해갑니다. 하지만 통일된 거대 이슬람제국인 오스만투르크의 등장,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인한 지중해교역의 감소, 그리고 기타 다른 역사적 흐름속에 성 요한 기사단은 점차 그세력을 잃어가게 되고, 18세기말, 나폴레옹에 의해 몰타가 점령되고 가톨릭도 아닌 러시아 짜르가 기사단장을 겸하면서 그 오랜 영광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게 되죠. 물론 1814년 나폴레옹의 패망후, 빈체제하에서 기사단의 영토와 지위를 회복하게되지만, 한때 지중해를 호령하던 기사단의 영광은 되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 모습이엇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잔혹하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는 이 몰락의 길에 들어선 마지막 십자군 기사단에게도 재흥의 기회를 줍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기사단이 지위를 회복한 얼마뒤인 1821년, 그리스에서는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발발하게 되고, 그리스저항세력들은 독립을 위해 외세의 지원에 호소하게 되죠.
기사단에게 이것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들은 이 그리스독립전쟁으로 그들이 1523년 상실한 로도스섬을 되찾아, 기사단 부흥의 기점으로 마련하고자 했죠. 기사단 의장인 마르퀴스피에르-히폴리트 드 생-크루아-몰레(Marquispierre-Hippolyte de Sainte-Croix-Molay)는 1823년 7월, 그리스 저항세력의 지도자인 알렉산더 마브로코다토스(Alexander Mavrokordatos)와 협약을 체결합니다. 기사단이 로도스를 회복하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그리스저항세력이 기사단에게 이미 그들이 회복한 섬 2개를 제공해주는 대신, 기사단은 저항세력에게 병력과천만프랑이라는 전쟁 자금을 마련해주겠다는 내용이었죠.

이제 오랜 고토를 회복할 기회가 찾아오자, 기사단은 의욕적으로 자금조달에 착수합니다. 그들은 런던주식시장에서 자신들이 보유하던 주식을 처분해 64만 파운드를 마련하고, 5%이자율로 20년뒤에 상환할 채권 5천개를 발행하죠. 몰락하긴 했어도,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부와 인지도는 결코 가벼운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어렵사리 마련한 돈은 결국 쓰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기사단은 사실상 프랑스기사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었고, 프랑스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죠. 사실 기사단의 이번 계획자체도 프랑스의 그리스독립운동 지원정책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기사단이 조달하고도 모자란 자금은 프랑스정부가 지원할 예정이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영국같은 다른 그리스독립운동의 후원자들은 프랑스가 적극적인 정책으로 그리스 독립전쟁 후원에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곱게 보일리 없었고, 자연스레 프랑스에게 기사단의 계획을 취소시킬것 요구하는 압력이 들어왔죠. 엎친데 겹친격으로 런던 주식시장에서 마련한 자금의 일부가 횡령되었다는 의혹까지 받게되자, 기사단의 재흥을 위한 계획은 사실상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1827년, 마침내 그리스가 독립했을때, 기사단에게 돌아간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생 크루아와 기사단은 이후에도 로도스 회복, 혹은 더 나아가 레반트지역의 회복을 위한 게획을 계속합니다. 이들은 1827년, 스코틀랜드 사업가 도날드 큐리에(Donald Currie)의 지원을 받아, 영국인들로 구성된 기사단을 편성, 원정에 나설 계획도 세우죠.
하지만 이 새로운 영국인들로 구성된 성 요한 기사단은 몰타의 기사단과는 꽤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일단 구성원들이 영국인이다보니 몰타의 기사단과 달리 모두 개신교였고, 중세 기사단의 금욕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크게 동의하지도 않았죠. 만약 기사단이 이 신교도 기사단과 함께 레반트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다면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양측의 충돌과 마찰은 피할수 없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사단은 1830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점령하자, 레반트지역으로의 원정보다는 알제리에 새로운 기사단 본부를 두는데 더 주력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무장한" 기사단의 개념이 시대에 뒤떨어진것을 인정하고 포기하게 되죠. 영국의 성 요한 기사단은 19세기말 영국 왕실의 기사단중 하나가 되고요.
하지만 이 "무장한 종교기사단"은 이로서 사라진게 아니었죠. 19세기가 끝나기전에 어느 프랑스추기경에 의해, 이 기사단의 개념은 다시 한번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성 요한 기사단의 단장이기도 했던 러시아의 짜르 파벨 1세.
몰타를 빼앗긴 기사단은 나폴레옹의 위협으로 보호받기위해 짜르를 단장으로 선출합니다.>
몰타를 빼앗긴 기사단은 나폴레옹의 위협으로 보호받기위해 짜르를 단장으로 선출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잔혹하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는 이 몰락의 길에 들어선 마지막 십자군 기사단에게도 재흥의 기회를 줍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기사단이 지위를 회복한 얼마뒤인 1821년, 그리스에서는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발발하게 되고, 그리스저항세력들은 독립을 위해 외세의 지원에 호소하게 되죠.
기사단에게 이것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들은 이 그리스독립전쟁으로 그들이 1523년 상실한 로도스섬을 되찾아, 기사단 부흥의 기점으로 마련하고자 했죠. 기사단 의장인 마르퀴스피에르-히폴리트 드 생-크루아-몰레(Marquispierre-Hippolyte de Sainte-Croix-Molay)는 1823년 7월, 그리스 저항세력의 지도자인 알렉산더 마브로코다토스(Alexander Mavrokordatos)와 협약을 체결합니다. 기사단이 로도스를 회복하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그리스저항세력이 기사단에게 이미 그들이 회복한 섬 2개를 제공해주는 대신, 기사단은 저항세력에게 병력과천만프랑이라는 전쟁 자금을 마련해주겠다는 내용이었죠.

< 알렉산더 마브로코다토스(Alexander Mavrokordatos)>
이제 오랜 고토를 회복할 기회가 찾아오자, 기사단은 의욕적으로 자금조달에 착수합니다. 그들은 런던주식시장에서 자신들이 보유하던 주식을 처분해 64만 파운드를 마련하고, 5%이자율로 20년뒤에 상환할 채권 5천개를 발행하죠. 몰락하긴 했어도,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부와 인지도는 결코 가벼운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어렵사리 마련한 돈은 결국 쓰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기사단은 사실상 프랑스기사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었고, 프랑스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죠. 사실 기사단의 이번 계획자체도 프랑스의 그리스독립운동 지원정책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기사단이 조달하고도 모자란 자금은 프랑스정부가 지원할 예정이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영국같은 다른 그리스독립운동의 후원자들은 프랑스가 적극적인 정책으로 그리스 독립전쟁 후원에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곱게 보일리 없었고, 자연스레 프랑스에게 기사단의 계획을 취소시킬것 요구하는 압력이 들어왔죠. 엎친데 겹친격으로 런던 주식시장에서 마련한 자금의 일부가 횡령되었다는 의혹까지 받게되자, 기사단의 재흥을 위한 계획은 사실상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1827년, 마침내 그리스가 독립했을때, 기사단에게 돌아간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생 크루아와 기사단은 이후에도 로도스 회복, 혹은 더 나아가 레반트지역의 회복을 위한 게획을 계속합니다. 이들은 1827년, 스코틀랜드 사업가 도날드 큐리에(Donald Currie)의 지원을 받아, 영국인들로 구성된 기사단을 편성, 원정에 나설 계획도 세우죠.
하지만 이 새로운 영국인들로 구성된 성 요한 기사단은 몰타의 기사단과는 꽤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일단 구성원들이 영국인이다보니 몰타의 기사단과 달리 모두 개신교였고, 중세 기사단의 금욕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크게 동의하지도 않았죠. 만약 기사단이 이 신교도 기사단과 함께 레반트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다면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양측의 충돌과 마찰은 피할수 없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사단은 1830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점령하자, 레반트지역으로의 원정보다는 알제리에 새로운 기사단 본부를 두는데 더 주력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무장한" 기사단의 개념이 시대에 뒤떨어진것을 인정하고 포기하게 되죠. 영국의 성 요한 기사단은 19세기말 영국 왕실의 기사단중 하나가 되고요.
하지만 이 "무장한 종교기사단"은 이로서 사라진게 아니었죠. 19세기가 끝나기전에 어느 프랑스추기경에 의해, 이 기사단의 개념은 다시 한번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덧글
LVP 2009/09/07 12:54 # 답글
아니 저양반들은 시대가 어느시댄데, 또 기어나와??? (!?!?!?)
Cicero 2009/09/07 12:55 #
오늘날까지 잘살고 있음
나디르Khan★ 2009/09/07 14:39 # 답글
와 정말 재밌습니다 :)
Cicero 2009/09/07 17:03 #
감사합니다^^
Joven 2009/09/07 15:01 # 삭제 답글
오늘날 까지 잘살고 있다는건, 프리메이슨 처럼 사조직의 형태로 남아있다는 거임?
산왕 2009/09/07 15:08 # 답글
지금도 몰타기사단은 있고^^; 기사단장은 '추기경' 지위를 인정받습니다.
nighthammer 2009/09/07 15:31 # 답글
지금 로마였나? 하여튼 이탈리아 어디쯤에 본부를 두고 있지요. 홈페이지에 "더 이상 검으로 싸우는 전쟁은 없으나, 평화로운 도구들을 사용해 질병, 가난, 사회적 단절과 편견과 싸워나가는 것은 믿음을 지키고 전파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라고 적혀 있다던가.
Joven 2009/09/07 15:39 # 삭제 답글
음 그럼, 거의 시민단체화가 된거로군요.
StarSeeker 2009/09/07 15:46 #
지금은 전투집단으로써는 의미를 상실했고, 구호단체가 되었지요. 그러니깐 본래 창설목적으로 되돌아갔다고 보면 됩니다.본래 성 요한 기사단은 십자군 원정 당시 병원 운영과 성지를 방문하는 신도들을 보호하고, 구호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기사단이니까요.
로마에 본부가 있고, 바티칸 시국처럼 엄연히 국가로써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요한은 영토만 없을뿐이죠)
Cicero 2009/09/07 19:03 #
Joven/그래도 시민단체라기보단 국가에 더 가깝지.더불어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3국,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과 남미(심지어 쿠바까지 포함한)국가들과 수교중.
레비아탄 2009/09/07 19:46 # 삭제 답글
새 연재이신가요? 기대됩니다^^
Cicero 2009/09/07 20:40 #
연재라고 할만큼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지난번 살라딘 이야기처럼 최근에 입수한 외국사적에 나오는 19세기 제국주의와 십자군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책분량이 짧다보니 앞으로 2~3개정도밖에 추가 포스팅이 없겠지만, 기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브공군 2009/09/07 20:56 # 답글
로마 콘도티 거리에 가면 요한 기사단 본부가 있죠. 영토없는 국가로 UN 옵저버 자격도 있습니다.(근데 웃기는 건 그 콘도티 거리는 로마 최고의 명품 거리로 관광객들이 북적인다는....)
Cicero 2009/09/08 20:03 #
기회가 된다면 한번 방문해보고 싶군요.
들꽃향기 2009/09/08 02:04 # 답글
그리스 독립때 기사단이 개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헐퀴 어디서 이런 음모론이 기어나와!'로 생각햇는데, 실제로 이런 시도가 있긴 있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Cicero 2009/09/08 20:04 #
역사란게 생각도 못한 의외성과 예외성이 있어 즐겁게 해주죠.
열심히 달리기 2009/10/12 12:15 # 삭제 답글
하아~ 저는요 궁금한게 있죠.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이렇게 퍼올리는건지요?저도 관심이 많아져서, 접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알아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자료를 접할 수 있을지 물어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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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콘티티 거리. 명품을 잘 몰라서 그런지, 그런가보다 했고요.
저녁에 찾은 콘티티 거리의 기사단 본부!!! 기뻤죠.
그러나 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네요. ^^
Cicero 2009/10/12 18:52 #
가끔 원서를 구하거나 아니면 위키나 구글에서 관련단어들 검색해서 건져올려서 번역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