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로키족의 전사추장, 남군의 기병준장, 스탠드 와티(2) side of history

이주반대파의 이주파 습격이 벌어진뒤, 체로키족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혼란스러운 상황은 미합중국의 전 대톨령 앤드류 잭슨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앤드류 잭슨은 일련의 폭력사태를 주도한 이주반대파를 처벌하지 않았다며 존 로스를 비난하는 한편, 와티에게는 그를 부추기는 편지를 보냈다. 자신은 체로키족의 평화를 원하지만 와티가 원하는 것을 얻지못한다면 폭력을 사용하는데 망설이지말라는 내용이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싸움을 더 부추긴 것이다. 현 연방정부의 입장도 이 전직대통령보다 조금 나은정도에 불과했다. 와티가 전사들을 소집하고 무장을 시작하자, 로스는 연방정부에 모종의 조치를 부탁했는데, 이에 대한 연방정부의 조치란것은 와티에게 무장해제를 '권고'한 것이다.

<결국 제일 나쁜놈은 앤드류 잭슨>



냉혈함과 용기, 그리고 능력을 갖춘 타고난 전사였던 와티는 이제 가족과 지인의 보복 그리고 생존을 위해 동족을 상대로 벌인 내전은 부족을 끔찍한 혼란기로 내몰았다. 얼마나 심각했던지 와티가 그의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개들이 죽었다는 얘기와 비슷하게 여긴다"고 묘사될 정도였다. "눈물의 길"과 이후 서부 정착과정의 피해에 업친데 덮친격으로 내전은 체로키족 사회를 심각하게 피폐화시켰다.

결국 이주파와 이주반대파는 내전의 지속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될뿐이라는 사실에 공감했고, 1846년 로스와 와티는 서부에서 부족의 새로운 번영을 위해 협조할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 와티는 체로키 부족의회의 의원이 되었다. 이로서 체로키족의 오랜 내분은 해결되었지만... 이제 시련은 외부에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국 건국이후 계속되었던 해밀튼과 재퍼슨의 대립이 북부와 남부, 노예제유지와 폐지라는 형태로 표면화되었기 때문이었다.1861년 이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자 체로키족은 대립하는 두세력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대추장인 존 로스는 이 '백인들간의 갈등'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에반해 와티는 이전부터 공공연히 남부를 지지했고, 자신의 부족을 남부연맹에 가담시키고 싶어했다. 로스와 와티는 10여년만에 부족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사를 두고 대립하게되었다. 다행히 이번엔 무력충돌로까지 어이지진 않았고, 결과는 와티의 승리였다. 체로키부족은 남부연맹에 가담하게되었다.

와티, 더 나아가 체로키족이 남부연맹에 가담한 이유에 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눈물의 길'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연방정부의 박해에 대한 반감이라는 것이다. 체로키외에도 남부연맹에 가담한  세미놀레, 칙카소, 크릭,촉토등의 부족들이 모두 '눈물의 길' 당시 강제이주당한 부족들이라는것을 생각하면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일것이다.이에 반해 와티의 개인적 배경에 주안점을 둔 주장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어쨋든 와티도 노예농장주" 였으니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당연히 노예제를 지지"했다는것이다.

원인이 무엇이었든간에, 이제 체로키족은 남부연맹편에서 남북전쟁에 가담했고 각각 스탠드 와티와 존 드류(John Drew)의 지휘를 받는 2개 기병연대를 제공했다. 

<존 드류 제2체로키기병연대의 연대장, 그의 연대는 1년도 못가서 해체되었다.>


<체로키기병대 병사>


이 기병연대는 1862년 3월 7일, 얼 반 돈(Earl Van Dorn)소장이 미시시피강 유역의 파야테빌레(Fayatteville)를 공격할때, 북군의 사무엘 R. 커티스(Samuel R. Curtis)소장이 방어하던 북동쪽의 피 릿지를 (Pea Ridge)를 포위하는데 동원되었다. 이전투는 3월 8일, 얼 소장이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 후퇴하면서 끝났는데, 와티는 이 전투의 마지막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는 아군이 후퇴하는 동안, 되려 북군에게 공격을 가해 북군의 포대를 점령하고 효과적으로 후퇴했다.

<피 릿지 전투>



<얼 반 돈 소장>

<사무엘 R. 커티스소장>


와티는 전설을 만들었지만, 이후 그는 다시는 이런 대규모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전투로 존 드류가 이끄는 또다른 체로키 기병연대가 사실상 괴멸하고 말았기때문이었다. 남군은 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기병대를 해체했다. 와티는 이후, 정규전대신 게릴라전에 나섰다. 그는 북군의 보급로를 타격하고 보급품을 약탈했다. 이런 게릴라전에서도 와티가 벌인 활약이란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는 아칸소강을 지나던 북군의 보급선을 습격해 당시 돈으로 15만달러에 달하는 물자를 약탈했고, 1864년 제2차 카빈 크릭전투에서 북군은 수송마차를 습격, 1달이상 부족을 먹여살릴수있는 만큼의 물자를 약탈해 남군의 승리를 이끌어내어, 이공로로 그는 준장에 진급하기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활약이 남군에게 불리했던 전황자체를 바꾸진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의 패배는 확실해졌고, 로스는 이 패배가 확실시 되는 세력을 버리고 연방정부에 새로운 동맹을 제안했다. 연방정부는 체로키족의 결정을 두팔벌려 환영하면서 로스를 감옥에 가두었다. 1865년 4월 10일,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와티는 이 결과에 승복할수 없었고, 계속 북군에 저항했지만 결국 1865년 6월 23일, 북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는 남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항복한 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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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VP 2009/04/06 13:11 # 답글

    믿었던 남부마저 개털리다니 재수도 X도 없지.. -ㅅ-;;;;

    거기에다가 그 이후에도 원주민들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을 하고 있었으니....
    (현재도 알콜중독률/문맹률은 톱랭킹이고, 초등교육 이수율은 바닥이니...)
  • Cicero 2009/04/06 15:51 #

    예전에 이원복교수의 현대문명진단에서 인디언들이 카지노개설해 돈번다는 이야기 소개하면서
    '인디언들의 복수가 시작됬다.'고 설래발쳤던게 기억나넹.
  • LVP 2009/04/07 13:57 #

    복수는 무신...빙고집 낸 원주민들도 운이 좋은 몇명정도(?)이지, 대다수는 빙고집은커녕 하루벌어 하루사는 사람이 많음...

    그리고 이원보기...걔 책 자세히 보면 시각이 졸라 삐뚤어진 것도 문제지만, 남의책 베낀듯한 느낌드는 게 한둘이 아님...

    ※그러고보니 원주민이 미국 내에서 비만율이 높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 미국같은 경우는 이상하게(?) 저소득층일수록 비만인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더라고...
  • 슈타인호프 2009/04/06 13:17 # 답글

    남부가 체로키족이 독자적인 주를 설립해서 연방에 가입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죠 아마?

    연방정부가 훗날 최후의 약속(오클라호마만은 인디언들의 소유로 남겨주겠다던)만이라도 지켜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_-;;
  • Cicero 2009/04/06 15:49 #

    태생부터 인디언에게 불친절했던 미합중국이었으니까요. 참 역사에선 아쉬운 순간들이 많습니다.
  • 이준님 2009/04/06 16:09 # 답글

    1. 남부가 승리하고 나서 1947년까지의 역사를 그린 타임라인 191 시리즈에서는 인디언들이 엄연히 독립 자치연방을 가지고 남부연합의 주요 인적 자원으로 여러 전쟁에서 활약하는 설정이 나옵니다.(1880년대를 그린 첫 시리즈에서는 게릴라부대 부사령관이 제로니모 -_-;;이지요)

    2. "친영파" -_-;;; 조지 워싱턴의 활약으로 독립이 무산된 -_-;;; 1984년을 그린 "두명의 조지"란 소설에서는 미국 (정확히는 영국령 북미 연방) 중부는 영연방 인디언 공화국이 난립한것으로 되어 있지요

    진상이 어떻던 간에 북미 인디언들의 운명에 대해서 소설속이나마 아쉬운걸 풀려는 움직임이지요

    ps:,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파치족의 각성-_-;;으로 서부에 아파치 제국을 건설하고 미국과 경쟁하는 대체역사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원복의 논지라면 재일교포들도 "일본인들에게 복수를 시작"한거지요. 카지노가 의외로 재일교포쪽에서 하는게 많습니다.즐거운게 아니라 그거라도 안 하면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입니다만(그리고 조폭~도 그렇고) 역시 이원복 설레발
  • ghistory 2009/04/06 22:51 #

    파친코!
  • Cicero 2009/04/07 00:02 #

    언제나 흥미로운 대체역사소설정보 감사합니다. 이준님.
  • 뽀도르 2009/04/06 18:19 # 답글

    체로키 사회가 19세기 초에 와해된 줄 알았더니 의외로 오래 갔군요.
  • Cicero 2009/04/07 00:02 #

    좀 다른 이야기지만 체로키족의 사촌격인 이로쿼이족 사회도 오래지속되었죠.

    1917년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할때 이로쿼이족연맹도 대독선전포고를 했었는데, 종전이후에도 평화협정을 맺지 않아 1941년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했을때, 이로쿼이족 독일과 '재교전'상태가 되었다죠.
  • ghistory 2009/04/06 22:51 # 답글

    질문드립니다: 맨 위의 잭슨 캐리커처의 의도와 출처가 궁금합니다.
  • Cicero 2009/04/07 00:19 #

    1806년 앤드류 잭슨은 찰스 딕슨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아내를 모욕하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결투를 벌입니다. 그 결과 딕슨이 사망했죠.

    캐리커쳐는 앤드류 잭슨의 독선적인 정치를 딕슨의 죽음에 빗대어 풍자한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출처는 언제나 그렇듯이 구글 이미지 검색되겠습니다.
  • ghistory 2009/04/07 00:27 #

    감사합니다.
  • jager 2009/04/07 15:13 # 답글

    미국 남북전쟁을 흔히 동부와 서부로 나눠서, 양측 수도가 붙어있는 동부 전선이 가장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인지도도 높았었죠. 그러나 전쟁은 그랜트와 셔먼의 바톤 터치 속에 이루어진 서부 전선에서 남부가 와장창 박살나면서 결정났고, 그래서 서부 전역을 재평가해야 된다..는 말도 많지요.

    다만 여기서 더욱 서부인 미시시피강 서쪽 지역은 완벽한 '마이너리그'...라서 어지간하면 잘 언급도 안하는 전장이 되었더군요. 나름 여러 번의 회전을 주고 받았지만 거의 예외없이 '쪽수가 많은 쪽이 승리'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남군 조 셀비의 특이한 말투와 장광설은 좀 회자되는 것 같더군요.
  • Cicero 2009/04/08 11:15 #

    일단 수도가 동부에 집중되있는데다 멕클레란의 반도상륙전이나, 게티즈버그같은 극적인 전투가 동부에 집중되있는 만큼 동부전선이 인기좋은게 당연한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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