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국가 헤센(2) side of history

1756년, 중부유럽을 뒤흔드는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간의 전쟁, 7년전쟁이 발발합니다. 영국은 이 중부유럽의 위기에 대응하기위해 1760년 9만명의 군대를 파견합니다. 하지만 이중에서 말그대로 '영국인'은 22,000명뿐이었죠. 나머지는 모두 현지독일에서 고용된 병사들이었고,-헤센뿐만 아니라 다른 독일의 소국가들도 이런 용병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중 최소 2천명가량이 헤센군이었죠.


7년전쟁은 헤센이 이전까지 지원병을 보냈던 전쟁들과 달랐습니다. 이전까지 헤센은 비교적 자국 영토에서 멀리떨어진 곳, 즉 전쟁의 이해당사자들과 자신들사이의 지리적 거리가 먼 전쟁에 참전했었죠. 하지만 이번 경우는 바로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고 헤센-카셀지역이 곧 적군의 점령과 약탈대상이 되고 말았죠. 결국 7년전쟁이 끝났을때, 헤센은 다시 산업이 황폐화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비록 기반산업이 폐허가 되었지만 재정까지 빈약한건 아니었죠. 영국은 전쟁기간동안 헤센군을 동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을 보냈는데, 이 예산은 1702년부터 1765년까지 헤센의 전체예산의 절반에 까지 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국의 재정지원은 헤센의 권력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되죠. 헤센의 영주는 이제 이 막대한 재정지원덕에 납세자들-상공업자길드라든가, 칸톤의회 혹은 대지주들-에게 재정적으로 기댈 필요가 없는 반면, 이 납세자들은 전쟁으로 인해 수입이 감소 하고 말았죠. 게다가 헤센의 영주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군대를 재조직했으니-어느때나 그렇지만 돈주머니 쥐고 있는자가 무력을 통제하죠.-, 전쟁의 결과로 영주는 권력을 움직이는 두축을 장악하게 됩니다.

헤센의 영주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고민은  막대한 부를 가져오는 군대를 인구 275,000명에 불과한 도시국가로 병력을 필요로하는 국가들에게 잘 훈련된 충분한 병력을 제공할수 있도록 유지하느가 였습니다. 용병사업이란게 결국 인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따라서 헤센 영주들에겐 징병가능한 인력을 조달할수있도록 인구문제를 해결하는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죠.

7년전쟁이 끝나가던 1762년 헤센의 영주, 프리드리히2세는 -프로이센의 '그사람'과는 비슷한시기의 동명이인입니다.- 이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분이 아닙니다.



이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지를 세개의 영역으로 구분했는데요. 실제 전장에서 싸울 야전군을 징병할 지역, 후방에서 치안을 유지할 예비군병력을 징병할 지역, 그리고 징병에서 면제받을 지역으로 구분되었죠.

이에 따라 앞의 두지역에서는 16세에서 30세까지 5~6피트 키의 모든 건장한 남성들은 징병대상이 되어야했죠. 프리드리히2세는 이 정책을 통해 24,000명의 병력을 유지 할수있었습니다. 인구 대비 군인의 비율로 치면 1/15, 헤센은 전 유럽에서 가장 군사화된 국가, 병영국가중 하나가 되었죠. 하지만 이 숨막히는 군국주의화로도 병력을 유지하기엔 벅찬감이 없지 않았죠. 그래서 또다른 병영국가 프로이센과는 달리, 외국인들의 입대를 허용하기도 했죠.

이렇게 입대한 군인들은 무려 24년이라는 토나오는 기간동안 군인으로서 복무합니다. -예비군의 경우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3주에서 6주간의 훈련을 받았습니다.-뭐 이런 경악스러운 복무기간에도 불구하고 헤센군이 비교적 높은 기강을 유지하면서 전쟁터에 동원될수있었던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죠. 우선 이들의 급료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현역군인들의 한달 급료로 두마리 돼지나 한마리 소를 살수있을정도였다는 군요. 게다가 군인들이 모두 한지방에서 징병되다 보니, 자연스레, 온가족 남자들이 군인인 경우가 많았고,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가 군인이 안되는게 더 이상했죠. 그리고 헤센은 당시로선 드물게도 일반사병출신이 경력을 쌓아 장교가 될수있도록 보장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아직까지는 귀족들이 장교를 독점하고 있던 상황에서 일반 사병들이 장교가 될수있다는것은 크나큰 신분상승이었죠.


월급많이 줄테니 24년 군복무하라고 하면 하실분 계시나요?



이런 징병지역주민들과 달리, 면제 지역의 주민들은 면제의 댓가로 250탈러 이상의 재산을 세금으로 내야했죠. 이 면제지역의 주민들이 대부분, 군수산업으로 돈좀 만지는 상인이나 지주들이었으니, 그나마 여유있게 납부할수있긴 했지만요.

하지만 7년전쟁이후 찾아온 헤센의 황금기-정확히말하면 용병국가로서의-는 18세기말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끝나가고 맙니다. 전후복구가 이루어지면서 헤센의 예산에서 납세자들이 내는 세금의 비율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 길드와 칸톤의회의 발언권이 커졌고, 용병산업의 수장인 헤센의 영주에 대한 견제 역시 커집니다.

게다가 인구의 1/15을 차지하는 군대를 유지하기위한 정부의 통제-요람에서 무덤까지-는 헤센인들의 불만을 부추겼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후반 퍼져나간 인본주의 사상은 피를 통해 돈을 버는 용병사업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증가시켰죠.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프리드리히2세는 그의 선조들이 택했던 가장 고전적이며, 일상적인 해결책을 택했죠. 바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프리드리히2세의 조카이자, 헤센의 최고 고객인 영국의 조지3세는 북아메리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필요했습니다. 둘의 이해 관계는 맞아떨어졌고, 삼촌은 조카로부터 2천만 탈러를 받고 원정군을 구성해 북 아메리카로 파견합니다. 그리고 "선의"와 "친교"의 의미에서 고객감사서비스-계약에서 생명수당조항을 삭제-를 제공하죠.

용병도 마일리지 되나염?



원정군은 헤센인 7천명과 그외의 독일지역에서 자원해온 19,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헤센군 사상 처음으로 필드 얘거와 경기병까지 포함한 유래를 찾을수 없는 규모였죠.  영국정부와 프리드리히2세는 전쟁의 빠른 종결과 높은 수익을 약속했지만, 영국이 지불한 돈중 불과 150만탈러가 병사들의 친지에게 전달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프리드리히의 돈주머니로 들어갔죠. 게다가 전쟁은, 1783년 영국의 패배로 끝나고 맙니다.

트렌톤의 영국괴뢰도당인 독일용병을 징벌하러 가시는 화성돈 장군님.



프리드리히2세에게 이 북아메리카의 전쟁은 이득이었지만, 헤센의 용병사업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재앙이었죠. 7,700명이 전사하고 5,000명 가량이 심한 부상이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귀국을 거부하고 북미에 정착했습니다. 전체 원정군의 절반이 넘는 17,000명이 돌아오긴 했지만 손실은 분명 큰편이었죠.

1785년, 원정으로 돈은 돈대로 챙겨먹은 프리드리히2세가 사망하고 빌헬름 10세가 헤센-카셀의 영주직을 계승합니다. 그는 우선 전대가 말아먹은 용병사업을 부흥시켜야 했죠. 빌헬름은 우선 병력을 확충하기위해 징병가능지역과 불가지역간의 구분을 없에고 전지역에서 징병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리고 이로인해 생길수있는 불만을 줄이기위해 복무기간은 이전의 24년에서 절반인 12년으로 줄였죠.


이후 용병국가로서의 헤센은 몇년간 더 지속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유럽의 왕정국가들의 공포심을 자극하자, 영국은 1793년과 94년 1,2000명의 헤센군을 고용해 베스트팔리아에 배치하죠. 이후 1798년에는 영국군에 고용되어 아일랜드혁명진압에도 동원되는데, 이때 대규모학살을 자행해 헤센군의 악명을 높이고 말았죠.

이후 헤센은 1806년, 예나전투의 결과로 베스트팔리아왕국에 복속되고 빌헬름10세는 덴마크로 추방되고말죠. 헤센인들은 이후에도 나폴레옹의 깃발아래 전쟁에 참가하고, 1813년 보나파르트가가 쫒겨나자 빌헬름10세가 복위했지만 헤센은 용병국가로서의 전성기는 끝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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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천지화랑 2009/03/22 16:53 # 답글

    군복무를 무려 절반으로 줄이다니, 좌빨의 선조로군요[랄라~]

    그나저나 정말 용병들이 전쟁 끝나고 먹튀하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ㅁ-;;
  • Cicero 2009/03/22 18:12 #

    헤센같은 경우엔 대부분 그 지방 출신이다보니 가족들에게 뭔가 불이익이 돌아갔다고 하네요.

    그리고 일반 징병이 아닌 자원병의 경우엔 가족들이 징병관에게 먹튀가 아닌 지원자임을 보증해야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어디 살맛나겠어요.
  • LVP 2009/03/22 17:02 # 답글

    씨바..월급받고 24년을 일하라고?? 안해!!! (??)
  • Cicero 2009/03/22 18:12 #

    많이 줘도?
  • LVP 2009/03/22 18:48 #

    안가!!! (두두두두!!!)

    ※2년했으면 됬지, 또가라고? 차라리 날 죽여..
  • ghistory 2009/03/22 19:43 # 답글

    칸톤의회→영방의회(영방신분의회)? 칸톤은 심하게 스위스 분위기가 나는군요.

    도시국가: 헤센은 도시국가가 아니라 영방국가였습니다.

    세금: 연별 기준인가요?

    베스트팔리아→베스트팔렌.
  • Cicero 2009/03/22 23:33 #

    1. 칸톤이란 단어는 원문그대로 사용했습니다.

    2. 병역면제비는 일시불이고 그외볋도 세금이 들어가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연재할 북아메리카의 헤센군(언제 할진 모르겠지만...)에서 추가해보도록 하죠.
  • 계원필경&Zalmi 2009/03/22 20:00 # 답글

    역시 단골 손님에게 아량(생명수당 삭제)을 배푸는 프리드리히 2세의 관대함이란...(건 개뿔이죠...;;;)
  • Cicero 2009/03/22 23:35 #

    더 대단한건 2천만 탈러 대부분이 이양반 개인금고로 들어갔다는것이죠. 무지랭이 민중들이 자산관리못할까봐 친히관리해주시는 영민함..(개 풀뜯어먹는 소리죠...)
  • 들꽃향기 2009/03/24 05:54 # 답글

    24년 군복무라니...;; 거의 이쯤되면 스파르타 급이군요 ㄷㄷ;; 거기에 단골고객을 위한 부가비용 면제 서비스까지..-_-;; 현대의 용병국가로 통하는 방글라데시도 이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 Cicero 2009/03/24 17:17 #

    200년전 용병국가를 이해한다는거 자체가 무척이나 힘든일이죠.ㅎㅎ ^^;;;;
  • 迪倫 2009/03/29 22:06 # 답글

    어느 사이트에서 이 헤센병들에 대해 mercenary라고 표현한 다음 지금의 mercenary와는 개념이 틀리니 그렇게 이해하면 안된다고 적혀있었던것을 본적 있습니다. 구르카족들과 비슷한 경우일까요? 하나의 전통산업으로서의 "군인"같은...
    아무튼 잘읽었습니다. 그리고, 링크 신고합니다.
  • Cicero 2009/03/30 08:59 #

    mercenary라고 하면 개인이나 법인이 돈주고 군역에 종사한다 의미가 강하죠. 하지만 헤센은 그런 개인이나 사적 조직체가 아닌 국가가 돈을 받고 병력을 제공한것이니 mercenary보다는 지원군이란 의미의 auxiliaries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게 옳다더군요.

    근데 이거 설명한 필자가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을 예로들어서 좀 씁쓸하더군요.

    그리고 링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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