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판 덩케르크, 60,000 (2) ㄴWW 2

알바 이울리아

4월 17일 밤, 수송선 알바 이울리아(Alba Iulia)와 다누비우스(Danubius) , 그리고 이들을 호송하는 호송선단으로 구성된 선단이 세바스토폴을 출발했다. 선단은 처음엔 이미 흑해의 두 항구를 왕래하던 다른 선단들과 마찬가지였다. 소련 잠수함의 공격을 받았지만, 피해가 없었으며 오히려 격침시킨걸로 추정되었고, 발틱함대 제5근위대잠항공연대 소속 IL-4 5대에게 공습을 받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피해가 없었다.

<IL-4>

그러나, 4월 18일 12시 37분, 이들에게 예외적 상황이 다가왔다. 제36 대잠항공연대소속 A-20G 4대가 해를 등지고 이들에게 강습해온것이다. 이들의 폭격의 결과는 이전과는 틀렸다. 한발의 폭탄이 배주변에 떨어졌고, 다른 한발이 창고에 직격했다. 얄궂게도 그곳에 타고 있던 소련 포로 500명이 그자리에서 사망했다. 알바 이울리아는 공습으로 배가 항구쪽으로 기울었고, 뱃머리는 점차 물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콘스탄챠에선 서둘러 이 선단을 구하기위해 구축함 NMS 레겔레 페르디난드(Regele Ferdinand)와 NMS 레기나 마리아(Regina Maria)를 7대의 수상기와 함께 파견했다. 한편 세바스토폴에서도 이들을 구하기위해 수송선 오사그(Ossag)와 수송선 KT25,26이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선 호위선단들이 생존자들을 구하기위해 애쓰고 있었다. 대잠함 UJ109가 알바 이우리아를 견인하려했지만, 방향타가 망가져서 견인도 불가능했다.

<A-20>

소련은 그동안은 부진을 만회하려는듯 끈질겼다. 오후 1시 20분, 다시 세대의 폭격기가 이들 선단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폭탄들은 배에 명중하지 않았고 엉뚱하게도 물에 빠진 생존자들 사이로 떨어졌다. 10분뒤, 이번엔 가라앉고 있는 알바 이우리아를 노리고 5대의 A-20이 날아왔다. 이들은 알바 이울리아를 향해 어뢰를 날렸지만 모두 빗나갔고 오히려 대공포화에 2대가 격추당했다.

오후 3시경, 콘스탄차에서 날아온 수상기들에의한 구조작업이 완료되었다. 40분뒤에는 세바스토폴에서 출발한 오사그가 남은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알바 이우리아는 그 공습속에서도 여전히 용케도 가라앉지 않았기때문에 두척의 예인선이 배를 끌기위해 향했다.알바 이우리아는 간단한 수리를 거친뒤, 4월 20일 오전 10시에 콘스탄차항구에 입항할수있었다.

오사그의 최후

알바 이우리아의 참극이 있는 동안에도 세바스토폴에서 추축군의 탈출은 계속되었다. 4월 19일과 20일, 두개의 독일 선단이 세바스토폴을 출발해 총 17,000명의 인원을 수송했다. 21일에는 오사그와 KT26이 호송선단과 함께 콘스탄차를 출발했다.  알바 이우리아 구조임무에서 막귀환한 레겔레 페르디난드가 이선단의 호송임무에 합류했다. 

출발한지 얼마안된 오전 8시 30분, 13기의 IL-2가 선단을 노리고 접근했다. 하지만 이전에 수많은 공격이 그랫듯, 어떠한 피해도 주지못했다. 이어 18기의 IL-2가 다시 접근했지만 오히려 1기가 추축국 전투기에게 격추당하고 말았다. 이어 9시 40분, 13기의 폭격기가 선단을 덮쳤다. 이번에도 호위전투기들 덕분에 두기의 폭격기를 격추하고-사실 한기는 엔진 트러블로 추락했다고 한다.-격퇴했지만, 이들이 투하한 폭탄은 오사그의 뱃머리에 명중했으며 파편으로 레겔레 페르디난드의 통신설비를 파괴되었다. KT26이 오사그의 견인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11시 10분, 다시 6기의 Pe-2가 선단을 향해 날아왔고 작전은 중지되었다.

<IL-2>

선단은 둘로 나뉘었다. 손상을 입은 오사그는 호위함 Rb206과 함게 콘스탄차로 귀환하고 나머지는 세바스토폴로 향하기로했다. 하지만 얼마뒤 오사그의 함장은 계획을 바꿔 다시 세바스트폴로 향했다. 콘스탄차보다는 세바스토폴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판단자체야 나쁘진 않았지만 어쨋든 시간을 낭비해 다른 선단과 뒤떨어진것은 실수였다. 독일은 오사그 호위를 보조하기위해 대잠함 UJ103을 파견했다. 오사그의 호위함, Rb206과 UJ103은 오사그가 세바스토폴에 도착할수있도록 견인했다. 하지만 두척의 호위함이 호위라는 본래 임무보다 견인에 매달려 있을 때, 소련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소련군 잠수함 M-35가 UJ103을 향해 어뢰를 발사했다. 그러나 역시나 빗나가고 말았다. 소련군은 쉴틈을 주지 않았다. 이어 5대의 A-20이 선단을 공격했고 UJ103은 상부 갚판이 작살로 기지로 돌아가야했다. 오사그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오후 4시 경, Rb206에 의해 세바스토폴 남서쪽 15해리떨어진 지점에서 자침되었다.

<소련군의 M-35 잠수함>

아들러 계획은 계속되었다. 루마니아의 군함들은 수송선들을 보호하며 부지런히 오갔고, 흑해함대는 집요하게 선단을 공격했다.4월 25일에는  흑해함대항공대소속 12대의 IL-2의 공격이 1.045명이 타고 있던 독일의 바지선 레오(Leo)에 직격, 레오를 침몰시켰다. 레오에 타고 있던 인원 중 750명이 구조 받을수있었다.

4월 27일, 세바스토폴에서 마지막 선단이 출발하면서 60,000작전의 1단계가 끝났다. 14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이 작전으로 73,058명이 흑해를 건넜다. 이중 독일군이 28,394명, 루마니아군이 20,779명, 자유러시아군이 15,055명, 슬로바키아인 723명, 포로가 2,559명에 민간인 3,748명이었다.

항해도중 1.5%의 인원 사망했고, 한척의 독일수송선과 바지선이 적재 하중 초과로 침몰했다.

이제 추축군은 한숨돌릴수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휴식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현재 까지 세바스토폴에서 탈출시킨 원못지 않은 인원이 아직 흑해너머 저편에 남아있었다. 추축군 함대는 이들을 구하기위해 다시 바다를 건너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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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피투 2009/02/24 17:42 # 답글

    소련 포로 500명이 그자리에서 사망했다에서 기절햇네요 .. ㅋㅋ 정말 신의 장난..

  • Cicero 2009/02/24 17:51 #

    운명이란 참 잔혹하죠.
  • ghistory 2009/02/24 17:42 # 답글

    이우리아: 이울리아 아닐까요?

    다누비어스: 루마이나 배라면 다누비우스일 것 같습니다.

    제5근위대잠항공연대: 소련은 군주제가 아닌데 '근위' 라니 좀 이상하네요.
  • Cicero 2009/02/24 17:47 #

    루마니아어는 제가 모르다보니... 지적 감사합니다.

    그리고 근위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소련군조직은 Guard, 이른바 근위대라 불리는 부대들이 존재했습니다. 북한에도 있죠. 붉은 청년근위대.
  • ghistory 2009/02/24 17:52 #

    군주 대신에 '수령' 이 근위의 대상이 되었다면 그럴 법도 하겠군요.
  • Cicero 2009/02/24 17:57 #

    근위대 얘기에 사족 달자면 소련근위대의 역사는 모스크바공방전때부터입니다.

    후퇴만 거듭하면 소련군중에 유독 반격에 송공한 몇개 보병사단들이 있었죠.

    스탈린은 이부대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이들을 근위사단으로 재편했죠.

    뭐 근위라는 말을 단순히 엘리트부대정도로 한정 짖는다면 사회주의국가에 근위대가 있는 것도 이상할것 없을지도요.
  • ghistory 2009/02/24 17:58 #

    감사합니다.
  • 우마왕 2009/02/24 18:11 #

    근위라는 단어의 어감이 군주와 연결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전엔 붉은군대의 гвардейская에 친위라는 단어를 썼는데 어느 시점에선가 근위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하더군요. 사실 독재자나 당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감상 근위보단 친위에 가깝지 싶은데 말입니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гвардейская는 특별한 공적을 세운 부대들에 붙는 명예칭호였습니다. 야전군 중 16개, 전차군중 6개에 гвардейская가 붙었습니다.
  • ghistory 2009/02/24 18:32 #

    북한의 용어는 어쩔 수 없이 근위라도 하더라도 앞으로 번역할 때는 전문가들이 좀 친위로 바꿔주면 좋겠네요.
  • Cicero 2009/02/24 18:53 # 답글

    아마 독일의 친위대와 구별짓기위해서 근위라는 말이 자주 이용되었고, 정착된것 같네요.

    이부분에 관해선 계속 논의가 필요할거 같습니다.
  • 계원필경&Zalmi 2009/02/24 19:13 # 답글

    소련 포로 500명이 살아서 돌아갔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안타깝군요...(자유 러시아군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 Cicero 2009/02/25 01:16 #

    독소전이야 뤈래 비극의 연속이죠.
  • dunkbear 2009/02/24 21:05 # 답글

    근데 당시 전반적인 잠수함이나 항공기의 대함능력이 떨어졌던건지 아니면 소련의 대함전력 수준이
    저정도 밖에 안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지금까지는 도대체 뭐하나 깔끔하게 해치우는 법이 없으니... ^^;;;
  • 들꽃향기 2009/02/24 21:08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그러고보니 소련군은 저 해상수송을 차단하기 위해 수상전함을 투입하진 않았나보네요;
  • Cicero 2009/02/25 01:37 #

    dunkbear , 들꽃향기 /수상함대전력 빈약하기로는 독일이나 소련이나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그랬을겁니다.;;;
  • 슈타인호프 2009/02/25 01:49 #

    가용함정이라야 구축함에 어뢰정 수준인 흑해함대가 나갔으면 독일공군이 반겨 맞아 주었겠죠.
  • 피투 2009/02/25 00:53 # 답글

    이번편이 마지막편인가요? 뒷이야기가 더 있는것 같은데 말이죠...;;
  • Cicero 2009/02/25 01:14 #

    물론 더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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