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페르시아친구만들기(2)-러시아의 남하 ㄴGreat game

말콤대위의 사절단이 다녀간뒤, 페르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압박은 점증하가기 시작합니다. 1801년, 러시아는 그루지아를 완전히 병합해 버렸고, 이어서 페르시아의 영향권을 향해 진군해 들어갑니다. 지지아노프,간제, 카라바흐등 카프카스의 페르시아세력권은 이 거대한 제국의 새로운 영토가 되었죠. 그리고 급기야 1804년 6월, 샤의 기독교 세력권인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이 포위당하고 맙니다. 페르시아군은 여기서 러시아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하려 하지만, 오히려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영토를 빼앗기고 맙니다.


이 거대한 신생제국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게되자 샤는 급하게 자신의 새로운 동맹자, 영국을 찾습니다. 샤는 지난 1800년 말콤 대위가 와서 약속했던 대로, 영국의 원조를 받아, 침략자를 격퇴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길 바랬죠. 하지만 영국은 페르시아의 구원요청을 매몰차게 거부합니다. 조약에 따르면 프랑스와 아프가니스탄의 위협에만 공동대응한다고 되있었지, 러시아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 때문이었죠.

<이 코르시카출신청년이 유럽사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사까지 영향을 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유럽의 먼치킨 괴수를 상대하기위해서 영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국가들은 공동전선을 피고 있었는데, 영국은 아시아의 하찮은 동맹자를 돕기 위해, 유럽의 동맹자를 저버릴수 없었던거죠. 결국 샤는영국의 배신에 이를 갈며 저주할수밖에 없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영국은 이 배신의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프랑스가 페르시아에게 접근한거죠.

<나폴레옹 전쟁 당시 페르시아의 통치자, 후테 알리 샤>


나폴레옹은 1804년 초부터 페르시아에게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영국 대신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거죠. 그대신 페르시아는 프랑스군이 인도로 쳐들어 갈수있도록 길을 터주고 말이죠. 페르시아로서는 러시아의 위협도 막아내고 복수도 하고, 매우 좋은 조건이었죠.

"러시아의 위협은 러시아의 적으로만이 막을수 있다."

프랑스의 유혹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1807년 5월 4일, 페르시아는 영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프랑스군이 인도를 칠수있도록 길을 빌려주겠다는 내용의 조약을 프랑스와 체결합니다. 영국으로선 모골이 송연해 질수밖에요.

근데 여기서 잠깐, 지난 연재분을 보셨으면 아마 기억할겁니다. 제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페샤와르까지 지도를 올리며 무슨 축지법쓰는것도 아니고 이정도 거리를 걱정하냐고 했던 걸 말이죠. 물론 터무니 없이 긴 거리인건 맞습니다. 하지만 1800년과 1807년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나폴레옹에게 동맹의 유무였죠.

<참조삼아 다시 지도올려봅니다.>


아시다시피 1800년엔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프랑스의 적이었습니다. 인도는 둘째치고 유럽신경쓰기도 바빠죽을 지경이었죠. 하지만 이후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반 프랑스동맹을 격파하자 상황이 바뀌었죠. 이제 명실상부한 유럽의 패자가 된 나폴레옹은 오스만제국에게 인도까지 갈수있도록 길을 빌려줄수있냐고 묻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오스만제국은 나폴레옹의 요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거기에 1807년, 나폴레옹은 짜르 알렉산드르와 모종의 밀약을 체결합니다. 프랑스-러시아연합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 그곳을 기점으로 세계를 둘로 나눠 동쪽은 러시아가, 서쪽은 프랑스가 지배하고 연합군은 페르시아가 빌려준 길을 따라 인도를 침공한다는거였죠.이 밀약은 철저한 보안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영국이 도처에 깔아논 스파이들은 회담장에도 침투해 있었고 밀약의 내용은 런던까지 전해집니다.

<알렉산드르와 나폴레옹, 두 야심가의 야합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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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들꽃향기 2009/01/21 02:47 # 삭제 답글

    오오 이 대국적인 스케일 ㄷㄷ 그래도 보급이나 증원등의 문제에서 봤을때, 당시 프랑스의 능력으로 이게 가능했는지는 의문이네요 ㄷㄷ;;
  • Cicero 2009/01/21 11:37 #

    그러기위해선 오스만과 페르시아의 협력이 절대적이었죠. 그리고 이장엄한 게임은 어떤 의미에선 시작에 불과했구요.
  • 계원필경&Zalmi 2009/01/21 14:53 # 답글

    진정한 IF 라는 말을 쓰게 만든 협약이군요...(라지만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은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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