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팜 브레이크-2차대전 최대의 독일군 탈주사건 ㄴWW 2



영국 웨일즈 남부의 브리젠드에는 아일랜드 팜이란곳이 있다. 2차대전 전에 주변 공단의 노동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건설한곳인데, 전쟁 발발후에는 대륙 상륙작전을 준비하는 미군들을 위한 막사로도 이용되었다. 그러다가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미군들이 떠나자, 이곳은 198수용소로 명명, 그자리에 유럽에서 잡혀온 독일군 포로들이 매우게 되었다.

사실 아일랜드 팜은 포로수용소로 적당한 곳은 아니었다.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었고, 최대 2000여명에 이르는 수감인원에 비해 감시인원도 모자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에는 별다른 트러블없이 유지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초창기에 이곳에 수감된 포로들은 대부분이 병사였고, 탈출해서 전장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이 조용한 영국의 해변 마을에서 전쟁이 끝날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쪽을 선호했다.


그러나 1944년 11월경, 독일군 장교 포로들이 수감되게 되면서 이곳의 공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11월의 어느날 저녁에 아일랜드 팜 근교의 역에 도착한 이들 장교 포로들은 시작부터 까칠하게 굴기 시작했다. 이들은 역에서 내리면서부터 "하일 히틀러!"를 외쳐되었고, 수용소측이 배차가 안되는 관계로 포로들에게 역에게 2마일(3.2km)가량 떨어진 수용소까지 걸오라고 하자 포로들은

"차가 올때까지 움직이지 않겠다!"

며 역앞에 자리를 깔고 버텼다.

아일랜드 팜 기념관의 기록에 따르면 워낙 외지에 있고 포로수용소가 물자배분에 있어 우선권이 없어 부득이 하게 배차가 안되었다고 하지만 글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장교 포로들 기죽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게 아닌가 싶다.

포로들이 결국 움직이길 거부하자, 영국군들 입장에서는 난감했다. 언제 올수있을지조차 확실치 않는 차를 기다리며 마냥 역앞에 있을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하루가 다 지나기도 전에 독일군 포로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수용소로 걷게 되었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건 그 역의 역장이었다. 역장은 당시 영국 철도국 제복을 입고 나왔는데, 제복에 달린 수많은 장식들은 독일군 포로들로 하여금 그를 고위급 장교로 오해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우린 그가 장군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결국 이 어이없는 오해 덕에 독일군 포로들은 별탈없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대전 당시의 영국 철도원 유니폼. 밑에 가운데 분이 아마 역장 정도는 되는 분 같은데 이걸 군복이랑 했갈렸다고??>

그러나 이건 이 까칠한 독일군 포로들이 수용소당국에게 친절한 첫인사를 보낸거에 불과했다. 수용소 보초들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독일군포로, 특히 장교들이 늘어나면서 수용소 공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얼마지나지 않아, 브리젠드 지역 병원에 두명의 크릭스마리네 장교가 입원했다. 그들이 입원한 이유는 포로들이 히틀러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는데 반대하자 구타당했기 때문이었다!

또 얼마뒤에는 수용소내의 군종신부가 수용소장에게 보호를 요청했다.-물론 신부도 포로였다. 한 무리의 젊은 장교들이 자신들의 체육관으로 쓰도록 성당으로 쓰이는 막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 장교들은 불응할시 힘으로라도 뺏겠다는 친절한 안내도 있지 않았다. 결국 수용소당국은 협박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인 이 신부를 다른 수용소로 이감시켰다. 성당은 체육관이 되버렸고.

1945년 1월 26일에는 수용소 당국이 예상할수있는 최악의 사태중 하나가 발생했다. 포로 중 한명이 사망한것이었다. 사망자의 이름은 오토 이스카트, 대서양방벽 건설을 위해 동원된 자문위원이었다. 그의 나이는 53세, 직접적인 사인은 심근경색이었지만 포로들이나 간수들은 그가 공공연하게 독일의 승리를 부정하다가 장교들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에 장교들의 가혹행위가 그의 사망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포로들 사이에서는 그가 칼에 찔려서 사망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1945년 1월, 수용소에서 사망한 오토 이스카트>


포로들, 특히 장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수용소내에서 거슬릴것 없이 행동하는것을 넘어 본격적인 탈출을 구상하게 되었다. 열차에서 내릴때부터 "하일 히틀러"를 외쳤던 그들은 자신들의 총통에게 돌아가기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로들은 수용소당국을 우습게 봤다. 그것도 좀 지나치게.
당시 198수용소의 소장은 달링 중령. 1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가됬다가 탈출해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왔던 경력의 인물이었다.

탈출 계획

탈출을 꿈꾸는 독일군 포로들과 탈출을 해봤던 달링 중령의 피말리는 머리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98 수용소 소장 달링중령>


198수용소의 독일군포로들이 탈출에 대한 징후가 농후해 지기 시작하자, 달링중령은 브리겐드의 경찰청장, 메이와 만나, 독일군 포로들의 탈출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려 했다. 메이는 달링에게 포로들이 탈출하거나 탈출하려는 징후만 보여도 수용소 인근 3마일을 봉쇄하고 수색하자고 제안했다.


<브리젠드의 경찰청장 윌리엄 메이>


뭐 확실한 대책이긴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웨일즈 남부의 시골마을인 브리겐드의 주민들이 불안해할건 뻔했다.-하기사 전쟁중에 어디든 안불안하겠냐만은... 메이가 이렇게 강도높은 대책은 주문하고 나선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보기엔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탈출한다해도 그들이 영국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국에 남아 폭파공작을 벌일것이라고 메이는 생각한것이다.

달링은 메이와 계속해서 추가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포로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는 포로들이 밤낮으로 필요이상으로 소음을 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없이 야밤의 군가를 제창한다든가, 달그락대는 소리를 많이 낸다든가등등. 달링은 이런 소리가 왜 나는 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경험해 본 일이니까.

"녀석들은 땅파는 소음을 감추려 하고 있어."

1944년 1월, 달링은 두명의 장교를 수용소로 보내 막사를 뒤지게 했다. 예상대로 장교들은 16번 막사에서 널판지로 입구를 감춘 땅굴을 발견했다. 달링이 먼저 포로들에게 한방 먹인샘이었다.

달링은 땅굴이 발견된 이후에도 포로들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땅굴이 아니더라도 198수용소는 탈출할수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이곳에는 감시탑도 없었고 서치 라이트도 없었다. 조심 할거라고는 정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보초와 경비견들, 그리고 철조망뿐이었다.







<아일랜드 팜의 전경. 서치라이트도 감시탑도 없다.>



실제로 포로들은 땅굴없이도 탈출을 시도했다. 2명의 독일군포로는 비밀리에 만든 철조망 절단길를 이용해 탈출을 시도했고 부근에 위치한 탈보트항까지 도망쳤다. 물론 그곳에서 잡혔지만.

경비설비의 부족외에도 달링에게는 또다른 고민거리가 있었다. 그가 아는한 땅굴은 언제나 두개를 판다. 만약 한개가 걸리더라도 다른 하나로 탈출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도 포로생활때 그렇게 탈출했었고.

"땅굴 중 하나는 발견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도대체 어디에?"

포로들의 또다른 땅굴은 달링을 계속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달링의 예상대로 독일군은 9번막사의 지하에서 또하나의 땅굴을 파고 있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증거를 감춰가며 진행했다. 의심받는걸 피하기위해 주방의 주걱과 국자, 칼등을 가져와 땅굴을 팠고, 파낸뒤에 나온 흙은 둥글게 뭉쳐서 막사의 외벽과 내벽사이에 집어넣었다. 여기에 더해 땅굴에 낡은 옷들을 깔아 옷이 더러워지는 걸 막았다.

90x90cm의 넓이로 파져나간 땅굴은 점점 길어지면서 붕괴의 위험이 생겼다. 포로들은 땅굴에 부목을 대야했고 나무란 나무는 다 긁어모았다. 그들은 식당의 벤치를 훔쳐다가 부목으로 사용했고, 9번막사의 모든 침대다리를 잘라 부목으로 썻다.-침대 높이가 서로 다르면 의심받을 까닭이 있어 모두 잘랐다.

 출구가 되는 부분은 198수용소 인근의 가필드 데이비스의 농장이었는데, 포로들은 땅굴의 출구를 바위로 덮어 위장했다.


<땅굴의 구조>



포로들은 탈출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그들은 우선 198수용소의 경비를 약화시켜야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경비견의 처리가 문제였다. 그들은 카레가 개의 후각을 둔화시킨다는 풍문에 의지해보기로 했다. 탈출 d-day였던 3월 10일 새벽, 그들은 식당에서 훔친 카레가루를 철조망부근에 뿌린뒤, 철조망 밑에 엎드려서 경비견들을 기다렸다.  개들은 포로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짖지 않았다. 카레가루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의심가는 햏들은 집에서 한번 실험해보시길>

탈출때 생기는 소음, 수용소측의 인원 체크도 문제였다. 포로들은 소음도 덮고 인원체크가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다. 사실 이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당시 포로수용소내에서는 포로들을 위한 극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포로들이 자기들끼리 연극을 상연해 즐기 곤했다.

많은 포로들이 연극을 보기위해 이동할테고 공연 도중에 박수를 칠것이다. 연극은 자연스럽게 두가지문제를 다 해결할수있었다. 포로들은 연극이 시작되는때와 극중에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을 클라이막스부분을 탈출할 시기로 잡았다.

또다른 문제는 식량이었다. 이들은 수용소의 식당에서 음식물을 훔쳐오긴했지만, 자신들이 탈출해 독일 점령하의 지역에 갈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점을 생각했을때, 이들이 지닌 식량은 턱없이 모잘랐다. 그들은 하는 수없이 가던 길에 식료품점을 털기로 했다.

탈출을 기획한 주요멤버들인 한스 하츠하임과 베르너 지엘라스코,슈테피 에흘라트, 오스발트 프리어는 인근 공항까지 간뒤 그곳에서 비행기를 훔쳐서 독일점령지역까지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1945년 3월이면, 이미 독일군이 본토까지 밀린 시점인걸 생각하면 꽤 바보스러운 생각이지만... 어쨋든 공항까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선 가짜 신분이 필요했다.

이들은 브롬위치성까지 가는 노르웨이인 기술자와 영국군장교로 위장하기로 했다. 그들은 때마침 영국군장교 코트을 가지고 있었다. 포로들이 대부분 여름에 잡혀오다 보니 방한장비가 없던탓에 영국군이 지급해준거였다. 물론 악용되는걸 막기위해 단추도 군용품대신 사제품으로 바꾸고 뒤에 pow라고 이쁘게 수도 놔줬지만, 우연찮게도 몇몇 포로들은 영국군 군복 단추를 가지고 있었고 수논거야 뜯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노르웨이 기술자로 가장하는 일은 한스 하츠하임이 맏게 되었는데, 한스는 이들 포로중에서 가장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수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악센트는 심하게 독특했고, 어쩔수없이 노르웨이 기술자라는 설정으로 길가다 만나는 영국인들과의 대화를 맡게되었다.

덤으로 이들을 위한 가짜 명령서도 준비되었지만... 수준은 심히 조잡했고 누군가 꼼꼼히 보면 충분히 들통날께 뻔했다. 포로들은 전시 상황인만큼 누군가 보게되면 그냥 대충 흩어봐주길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3월 10일 저녁, 2차대전 사상 최대규모의 독일군포로들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포로들의 탈주극

※경고-이하의 에피소드에서는 필자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우연의 연속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모든 내용은 실제 당사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한 아일랜드 팜 기념관 홈페이지기록임을 밝힙니다. 고로 말도 안된다. 소설 아니냐는 태클은 아일랜드 팜 기념관 홈페이지에 가서 하시길. http://www.islandfarm.fsnet.co.uk/

1945년 3월 10일 저녁 10시, 마지막 점호를 마친뒤, 포로들은 탈출을 시작했다. 탈출을 위해서는 수용소에 잔류하길 원하는 인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계속 남아, 영국군들의 주위를 돌려줘야 했으니까. 잔류하기로 한 포로들은 비록 탈출할 생각은 없었지만 영국군을 골려먹을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탈주자들에게 협조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들은 탈출을 위한 마지막 작업이 내는 소음을 감추기위해 점호를 마친뒤에도 얼마동안 시끄럽게 노래를 불렀고, 한밤중에 조용해지자 연극을 보기위해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줏어온 돌들을 철조망을 향해 던졌다. 돌들이 철조망을 두들기는 소리는 영국군에게 철조망이 절단되는 소리로 들렸고 영국군은 소리가 들리는 철조망으로 집중되었다.

그사이 포로들은 탈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땅굴안에는 주전원에서 끌어온 전력으로 땅굴 내부에 불을 밝혔는데, 이 전등의 스위치는 탈출로의 시작점인 9번막사에 있었다. 잔류하는 포로들은 창밖을 보고 있다가 보초들이 땅굴의 출구쪽에 가까이 오면 전원스위치를 끄고, 보초들이 떠나면 다시 켰다. 땅굴 내부의 포로들은 불이 들어오고 나가는것을 통해 나갈 타이밍을 알수 있었다.포로들은 이런 치밀한 계획을 통해 70명에 가까운 인원을 탈출시켰다.

<포로수용소 땅굴의 출구>


그러나 영국군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철조망쪽 소음이 페이크고 가필드의 농장쪽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오것을 발견했다. 땅굴에서 67번째 탈주자인 루프트바페 장교, 헤르만 스찰렌베르크가 출구에서 나오는 순간, 영국군은 총을 쏘며 뛰어왔고 헤르만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헤르만은 운이 좋게도  그를 쫒아오던 영국군이 땅굴 입구에 빠지는 바람에 도망칠수있었다. 하지만 10여명의 포로들은 덤불속에서 숨어서 구경하다가 영국군이 땅굴에 빠지자 튀어나와 환호하다가 그자리에서 붙잡혔다.

결국 땅굴은 발견되었고, 포로들의 탈출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보초의 총에 맞은 한 포로가 브리겐드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의 이름은 톤스만 중위였는데, 그는 애당초 탈출 계획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가 탈출 당일날 끼어든 사람이었다. 그는 탈출에 편승해서 이득보려 했지만, 동시에 다른 포로들만큼 철저한 탈출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는 탈출 당시 하얀색 의약품 가방을 가지고 뛰었고, 덕분에 영국군의 좋은 타겟이 되었다.

포로들의 탈출소식이 알려지자, 브리겐드지역주민들은 동요하기보다는 군과 경찰의 수사에 적극동참하고 나섰다. 아일랜드 팜에서 2마일 떨어진 라레스톤 마을에서는 1940년 이후 독일군의 공격이 있을때 마다 울렸던 마을 교회의 종을 울렸다.

브리겐드지역의 홈가드 사령관으로 이지역 최대 장원의 소유자인 윌리엄 레웰린 대령은 만약을 대비해 장원을 수색하게 협조해 달라는 군과 경찰의 요청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는 군과 경찰의 수색이 끝나자

"그 바보들에게 다른 곳이나 수색해보라고 할껄 그랬어. 난 그날 아침에 내 수렵관리인에게 장원내에 밤사이에 찍힌 발자국따윈 하나도 없었다고 분명히 보고 받았단 말이야. 그 바보들이 내 장원 대신 다른 곳을 수색했으면 좀더 빨리 독일놈들을 잡았을지 누가아나?"

시민들의 적극적인 수사협조는 실제로 독일군 포로들을 잡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 브리겐드의 걸 가이드(영국판 걸 스카웃 정도?)지부에 있던 소녀들은 두 사람이 찾아와 심한 외국 악센트로 길을 묻자, 이를 의심해 신고했다. 이 2명은 곧 수사당국에게 체포되었고 예상대로 이들은 탈주자들이었다.

<스카웃과는 다르다! 스카웃과는! 영국의 걸 가이드>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포로들의 탈출구가 있었던 농장의 주인 가필드 데이비스가 그런 경우였는데, 그는 탈출이 있기 얼마전 농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포로들이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특히 가필드가 출구를 덮은 바위에 가까이 갈수록- 별수롭지 않게 무시했고, 결국 탈출을 막을수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멀리도망쳤던 포로들도 하나 둘 씩 잡혀 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잡혀온건 SS장교인 칼 루드비히와 하인츠 헤츨러였다. 이들의 탈출 계획은 수용소에서 나온뒤, 매일밤 아일랜드 팜 부근을 지나는 트럭에 몰래 올라탄뒤, 웨일즈의 수도인 카디프까지 간뒤 그곳에서 배나 비행기를 타고 도망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 계획은 지독하게 꼬였다. 매일 198수용소 부근을 지나던 트럭들은 하필이면 그날, 그곳에 나타나지 않은것이다.


결국 칼과 하인츠는 역으로 가서 열차 화물칸에 타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역으로 가던 중, 취객과 마주쳤고 급한김에 주변에 있던 아무집의 정원에 뛰어들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또 그 취객의 집이었다. 칼과 하인츠는 취객이 집안으로 들어갈때까지 덤불에 숨어 기다렸고 취객은 집에 들어가기전에 정원 덤불에 거하게 일을 보고 나서야 들어 갔다.

칼과 하인츠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역에 도착해 화물차에 타서 브리젠드를 떠나긴 했지만, 자신들이 어딨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자신들이 어디에 와있는지 확인하기위해 열차가 하역장에서 멈추자 열차에서 내렸고 그들이 다시 열차에 타기도전에 열차는 출발하고 말았다.

결국 칼과 하인츠는 걸어서라도 칼디프에 가기위해 걷기 시작했지만, 얼마 못가 포로들을 잡으러 나온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이 체포된곳은 아일랜드팜에서 8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면 탈출계획의 중심을 담당했던 4명-한스 헬츠하임, 베르너 지엘라스코, 오스발트 프리어, 슈테피 에흐레트-은 어떻게 됬을까? 탈주 첫날, 그들은 이전부터 눈여겨봐두었던 수용소 주변의 승용차를 훔쳤다. 한스와 오스발트는 차문을 따고 들어가 시동을 걸려고 했고, 베르너와 오스발트는 농장창고로 들어가 휘발유를 훔쳤다.

승용차를 훔친것까진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시동이 잘 안 걸렸다. 서너번 정도 실패하자, 시동거는 소리때문에 차주인이 깨서 뛰어나올지도 모른다며 두려워 했다. 그런데 그들 앞에 설상 가상으로 4명의 영국군의 순찰을 돌며 다가오고 있었다.

"jot됬다..."


그들이 첫출발과 함께 탈출이 실패했다고 직감하고 좌절했다. 그런데 그순간 한스가 기지를 발휘해 외쳤다.

"군인 아저씨들! 좀 도와줘요!"

4명의 병사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고 한스는 자신들의 설정상 신분을 나불된 뒤, 차시동이 안걸리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병사들은 이 노르웨이인 기술자와 일행이 방금전에 수용소를 탈출한 포로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시동거는 걸 도와주고, 그걸로 모잘라 손 흔들며 작별했다!

한스와 일행의 목적은 웨일즈의 수도인 카디프(아일랜드 팜에서 20마일 거리)까지 간 후, 그곳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훔쳐 독일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남의 나라 와서 길찾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영국은 2차대전 발발후 팔슈름 야거의 내습 시 적들이 목적지를 찾는걸 막기위해서 도로표지판을 모두 제거한 상태였다. 결국 이들은 길을 못찾아 해매던 중, 길가던 사람들이 있으면 붙잡고 길을 물어 보기로 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이들은 어느 친절한 영국인을 만났고, 그는 카디프 근교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가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이제 공항가서 비행기 훔치는 일만 남은 샘이었지만... 운명이란 참 잔혹한건지, 아니면 이들의 준비성이 미흡했던지. 휘발유가 떨어져 차가 퍼지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차를 숲에 숨기고 한참을 걸었고 브롬위치성(그들의 가짜 명령서에 도착지로 되있는 바로 그곳이다.) 부근에 숨어있다고 농부들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이들은 체포된 후에도 예의 차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차 주인인 베어드박사에게 차를 훔쳐 미안하며 차에는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휘발유값을 지불했다.

<한스 일행이 갔던 길>


독일군 포로들이 점점 잡혀들어오면서 그들이 수감된 경찰서 유치장에는 흥미로운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 하나가 포로들의 사제 지도였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국은 개전 이후 모든 도로표지판을 뽑아논 상태여서 침공부대든 탈출한 포로들이든 길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일랜드 팜에 수감된 어느 포로는 열차를 타고 수용소로 옮겨지던 도중 정차한 기차역에서 영국 철도와 도로망이 그려진 지도를 보았고 이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자신의 셔츠에 그려 지도를 만들었다. 사실상 길찾기 힘든 당시 영국에서 포로들의 탈출에 꽤 유용했던 물건이었다.


<문제의 셔츠지도>


1945년 3월 12일경이 되자, 대부분의 포로들-가장 멀리 도망쳤던 한스일행을 포함해서-이 체포되었고, 체포작전은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3월 12일 저녁. 한 남자가 경찰서로 뛰어들어오며 외쳤다.

"도와주세요! 독일놈이 제 아내를 쐇어요!"

릴리 그로슬리 피격사건

남자의 이름은 하워드 그로슬리, 피격당해 병원에 입원한 그의 아내 릴리 그로슬리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밤중에 산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탈주한 포로가 뛰어나와, 릴리의 핸드백을 빼았으러 들었고 하워드가 이에 저항하자 탈주자는 총을 쐇고 그총에 릴리가 맞았다는 것이었다.

"독일놈들... 그렇겐 안봤는데 강도짓까지 할줄이야..."

하워드의 진술에 경찰과 군인들은 탈주한 포로들에 대해 분노감을 표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3월 13일 아침,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경찰은 하워드의 신분에 관한 경악스러운 정보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하워드와 릴리는 부부가 아니었다. 둘사이에는 2살난 아이가 있긴 했지만,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다. 하워드에게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본처가 있었으며, 그는 탈영한 캐나다군으로 브리겐드의 민박집에서 살고 있었다.

경찰은 그의 문제 많은 신분은 둘째치고 탈주자들이 어디서 총을 구했는지 미심쩍어 했다. 결국 하워드는 릴리의 초기진술과는 다른 진술을 경찰들에게 했다. 자신과 릴리는 밤중에 산책하다가 포로를 만났고, 포로가 릴리의 핸드백을 빼앗으려 들자, 포로를 위협하기위해 하워드 자신이 가지고 다니고 있던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릴리가 총에 맞았다는 거였다.

수사당국으로서는 그 독일군포로가 누군지는 알수없었지만, 릴리의 초기 증언보다는 말이 되는 증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입원중 상태가 더욱 악화된 릴리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진실을 밝혔다.

"하워드는 등에 흉칙한 화상자국이 있는데, 그는 그것때문에 주기적으로 고통을 겪었어요. 그리고 항상 자신이 탈영병이라는것때문에 자신을 비하하며 괴로워 했죠. 그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산책도중 하워드는 또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 했고 결국 리볼버로 자살하려고 했어요. 전그걸 말리다가 총에 맞았고요."

결국 강도 탈주범은 존재하지 않았던 샘이다.

릴리는 총상이 악화되서 3월 16일 사망했다. 하워드는 릴리 그리피스(그녀의 실제 성이다.)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는 자살하겠다던 사람 답지 않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유죄가 인정되어 9월 5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훗날 종전뒤 당시 유보트 함장으로 탈주자 중 한명이었던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강도짓할사람으로 보였나?"


<예 그렇습니다. 그들은 도둑질은 했지만 강도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한스 일당이 훔쳤던 차량의 동형모델>

탈주 이후

결국 살인사건해프닝을 끝으로 아일랜드 팜 탈주극은 막을 내렸다. 그러면 잡혀온 포로들은 어떻게 됬을까?
믿기 힘들겠지만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은 없었다. 젼혀.

"우린 두가지 이유에서 그들을 처벌하는걸 두려워 했어요. 하나는 우리가 처벌을 가하면 독일놈들도 우리 포로들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거 였고, 또하나는 포로들은 거의 2000명이고 우리는 150명, 그중에서 90명만이 경비업무를 담당했죠. 폭동이 일어나면 막을 길이 없었어요."

뭐 이런 이유에서 공식적인 처벌은 없었지만 비공식적인 처벌은 있었다.

"우린 잡혀오고 나서 머리에 손을 올린체 일열로 줄지어서 벽앞에 세워졌다. 그리고 영국놈들은 우릴 총으로 겨누더니 불과 우리 머리위에서 1~2인치 떨어진 곳을 쐈다. 불과 1~2인치 말이다! "

칼 루드비히. 탈주중 가장 험한 고생을 했던 포로 중 한명의 회고다. 이외에도 비공식적인 처벌은 몇차례 더 있었다.

수용소당국은 1600명에 달했던 이곳의 모든 포로들을 잉글랜드의 노팅햄샤이어에 위치한 커버턴의 181수용소로 이감시켰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사건뒤가 그렇듯히 언론들은 병사들이 군기빠졌다고 열심히 까댔다. 그들은 심지어 철조망에서 소음이 들릴때조차, 병사들이 경보를 울리지 않았다고 비난 했다.

당연하게도 병사들은 이런 언론들의 매도에 분노를 표했다.

"1600명의 포로들을 불과 150명도 안되는 우리들이 관리하고 있다. 그중 경비병은 90명에 불과하고 1마일(1.6km)에 이르는 철조망을 10명이서 감시한다. 각 보초들 사이의 간격은 무려 176야드(160m)다. 근데 우리보고 어쩌라고?"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하원은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건조사에 들어갔고 결과로 몇가지 수용소 준수사항을 만들었다.

1.야간에 움직임을 감지하는데 충분한 전등을 배치할것
2.경비견순찰을 수용소 경계선 바깥쪽에 중점적으로 배치해 ㅇ유용하게 이용할것
3.비정기적이고 변칙적인 점호로 포로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못하도록 차단하며, 야간에 그들이 일을 못하도록 조용하게 만들것.
4. 담요나 옷같은것에 흙이 묻어있는지 체크할 것
5. 보초들은 막사주변에 흙이 뿌려져있진 않은지 체크할것.

대강 이정도의 내용이었다.

모든 포로들이 다른 수용소로 이감된뒤 198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팜은 그로부터 얼마뒤, 독일군 장성급포로들을 위한 특별수용소로 개조되었고, 룬트슈테트, 만토이펠, 프라우치히, 만슈타인같은 고위급 장성들이 수감되게 되었다.


<아일랜드 팜에 도착한 룬트슈테트>
 

덧글

  • LVP 2008/08/30 14:02 # 답글

    그러게 입주자들 받을 때 잘 받아야지..안그러면 동네 평화가 위태롭다(?)라는 교훈을 알려준 사례??
  • 다스베이더 2008/08/30 20:35 # 답글

    참 탈주극이라는게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건가요 ( -_-)
  • 한단인 2008/08/31 05:43 # 답글

    아..미치겠다.. 수용소 자체도 코메디지만 탈출극도 참..

  • Cicero 2008/08/31 19:01 # 답글

    LVP/애당초 잉길리애들이 포로수용소관리를 병맛으로 했으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맙시다.

    다스베이더, 한단인 /때론 현실은 어떤 픽션보다 재밌죠.
  • 시몬벨 2021/05/09 15:22 # 삭제 답글

    와...이거 진짜...가감없이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걸작코미디가 하나 나오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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